[사설]세무조사, 정치적 의도 배제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일 03시 00분


국세청이 어제 “공정사회에 역행하는 지능적 고질적 탈세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며 ‘공정하고 투명한 세무조사 운영’을 결의했다. 서민과 밀접한 생활필수품을 취급하면서 가격하락 요인이 있는데도 내리지 않는 유통문란 업체, 경영권 승계 중인 기업들의 세금 없는 대물림에 대해 일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납세 의무를 진 국민과 기업에 법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수납하는 행정기관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할 일을 하면 될 것이지, 느닷없이 ‘공정사회에 역행하는’ 탈세를 엄단하겠다는 것부터 겁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연초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는 (공직자들이) 직(職)을 걸고 챙기라”고 지시하자 국세청이 ‘가격을 인하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나서는 식이다. 세무조사를 물가인하의 압박수단으로 휘두르는 건 옳지 않다. 작년 이맘때는 지식경제부가 대형마트 관계자들을 소집해 “정부의 가격인상 자제 요청에 불응하면 세무조사를 할 수도 있다”고 압박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방불케 했다. 이번엔 이현동 국세청장이 알아서 총대를 메는 것인가.

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경제가 어려운 때에 대기업 2, 3세들이 소상공인들의 생업과 관련한 업종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는 것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발언하자 곧바로 국세청이 ‘꼼꼼한 세무검증’을 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재벌 딸들의 빵집 진출 자제를 권고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국세청을 동원해 위협할 일은 아니다. 기업의 탈세나 재산의 편법 대물림 사실이 있었다면 그때그때 법대로 처리했어야 한다.

국세청이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높은 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2013년까지 면제해주겠다는 것도 세무행정의 정도(正道)로 보기 어렵다. 일자리 창출 기업에는 사회보험료를 세액공제해주고 취업청년에게는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정부가 신설했다. 여기에 ‘세무조사 면제’를 선물로 주겠다는 것은 평소 세무조사를 징벌처럼 생각한다는 뜻이다.

김대중 정부는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세무조사를 벌이고, 추징금 수백억 원을 부과하는 보복성 권력행사로 오점을 남겼다. 정부에 미운털이 박히면 세무조사를 받고 세금을 두드려 맞는다면 공정사회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 정책적 목적을 위해 국세청을 ‘권력의 칼’로 악용한 전 정권들의 나쁜 선례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납세자에게 군림하는 국세청은 조세 정의(正義)와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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