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일성 김정일 지상 최대 ‘궁전 묘’ 세계에 부끄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북한 전역이 어제 거대한 장례식장으로 변했다. 수많은 주민과 군인이 눈발이 날리고 찬 바람이 몰아치는 영하의 거리에서 김정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17년 전 김일성 영결식 때의 장면을 재방영하는 듯한 모습이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2대에 걸쳐 66년간 통치하며 북한을 세계에 손 벌리는 거지 국가로 만들었다. 영결식에 동원된 북한 주민은 TV 카메라 앞에서 오열했지만 2400만 북한 주민 가운데 김정일의 죽음을 진정 슬퍼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권력의 식탁 근처에서 빵 조각을 나눠먹는 집권층과 군부, 평양의 특권층 주민과 달리 헐벗고 굶주리는 지방주민은 인민의 의식주도 챙겨주지 못한 독재자가 죽었다고 해서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일의 시신은 금수산기념궁전 아버지 옆에 놓였다. 금수산궁전은 수많은 북한 주민의 굶주림 위에 세워졌다. 김일성이 1977년 10억 달러를 들여 지은 관저가 그의 사후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무덤으로 변했다. 관저를 무덤으로 바꾸는 공사에 2억 달러가 투입됐다. 북한 주민의 원망은 탈북시인 장진성이 ‘궁전(宮殿)’에서 묘사한 그대로다. ‘그 궁전은/산 사람 위해서가 아니다/수조 원 벌려고 억만금을 들인 것도 아니다/죽은 한 사람 묻으려고/삼백만이 굶어죽은 가운데/화려하게 일어서/우뚝 솟아서/누구나/침통하게 쳐다보는/삼백만의 무덤이다’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11일 만에 무사히 영결식을 치르며 외형상으로는 순조롭게 권력승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모부 장성택이 측근에 포진해 혼란을 부르지 않고 아버지의 유고를 그럭저럭 넘길 가능성이 있다. 내년 4월 15일 김일성의 100회 생일을 맞아 실체도 없는 ‘강성대국 진입’을 선언하겠지만 그의 얼굴에 중국 청조(淸朝)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어른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노동신문은 어제 김정일이 남긴 최고 혁명유산으로 핵 보유를 꼽았다. 김정은이 유훈통치를 한다며 아버지의 길을 고집하면 북한체제의 종말은 의외로 빨리 닥칠 수 있다.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자 이라크 국민은 거리로 뛰쳐나와 그의 동상을 쓰러뜨린 뒤 머리 부분을 끌고 다니며 욕보였다.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었지만 톈안먼 사태 때 유혈진압을 명령했던 덩샤오핑이 시신을 화장해 바다에 뿌리도록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북한에 자유와 민주의 봄이 찾아오는 날, 김일성 부자의 궁전 묘에 성난 군중이 몰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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