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인재 모아도 시원찮은데… ‘악화가 양화 구축’하는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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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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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 기자
이승헌 정치부 기자
요즘 여야는 입만 열면 천하의 인재를 끌어모아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사퇴 하루 전인 8일 당 쇄신안을 발표하며 “자기희생적인 과감한 인재 영입을 하겠다”고 말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1일 전당대회에서 “시민통합당, 한국노총, 시민사회세력을 한자리로 불러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말잔치와는 달라 보인다.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거나 변화를 외치던 정치인은 떠나고, 이젠 욕심을 내려놓아야 할 국회의원들은 정치생명 연장에 골몰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격이다.

합리적 온건파인 3선의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12일, 민주당은 ‘지역구 세습’ 의혹을 받다가 자유선진당을 탈당한 이용희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의 복당 승인 결정을 슬그머니 발표했다. 이를 지켜본 민주당 내 젊은 당직자들은 자기들끼리, 또는 출입기자를 붙잡고 “도대체 당에 미래가 있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재창당 수위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에선 쇄신파 의원들이 잇달아 당을 떠나고 있다. 정태근 의원이 13일 탈당한 데 이어 황우여 원내대표가 제시했던 ‘반값 등록금’ 아이디어의 제공자인 김성식 의원도 14일 탈당계를 냈다. 한나라당에서 탈당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천한 일부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려 잠시 당을 나갔다가 복당한 이후 처음이다.

쇄신파 의원들은 종종 ‘말로만 혁신’을 외쳤고 그래서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받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영남권 중진들이 “나이 많은 게 죄냐”며 말로도 혁신을 외치지 않고 있을 때 탈당파들은 어떻게든 변화의 미풍이라도 만들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평소 먹성 좋은 정태근 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은 여야 합의 처리하자”며 10일간 단식한 게 그런 사례다.

이렇게 여야에서 잇따라 일고 있는 현역 의원들의 탈당, 불출마 러시는 결국 정당 정치의 존립 기반과 명분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정당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정치적 구심력’이 강해야 할 시기에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원심력이 작동한다는 것은 정당이 ‘조직’으로서 미래가 없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야말로 기성 정치의 ‘대공황’이 본격화하는 느낌이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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