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찻잔 속의 한나라당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1일 03시 00분


2009년 8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자민당은 119석을 얻었다. 이는 선거 전 300석의 39.7%에 불과하다. 반면에 야당인 민주당은 종전 115석의 2.7배인 308석을 얻어 정권을 창출했다. 지금 국내 정치상황도 2년 전 일본의 ‘선거혁명’을 연상시킬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딱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4월 11일의 19대 총선에서 ‘일본의 재판(再版)’ 같은 결과가 안 나온다는 법도 없다.

그제 한나라당은 당의 새 진로 모색을 위한 이른바 쇄신 의원총회를 개최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0·26 재·보선 결과에 대해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다”라며 민심과 다르게 평가하고 대학생들 앞에서 막말을 한 것을 사과했다. 연판장을 돌려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사과를 요구했던 25명의 쇄신파에 속하는 김성식 신성범 의원은 쇄신 요구 절차가 미숙했다고 인정했다. 여의도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고령(高齡) 의원 물갈이론’이 담긴 연구소 내부 문건이 공개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의 눈에는 이런 모습이 그저 ‘그들끼리의 찻잔 속 정치놀음’으로 보인다. 정국은 요동치는데 자신들의 방에 갇혀 자신들만의 얘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본보가 전국 유권자 4000명이라는 비교적 큰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가정전화와 휴대전화를 고루 사용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내년 총선에서 야권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44.5%)이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25.3%)보다 19.2%포인트나 많았다. ‘안철수 신당’이 출범하면 그 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36.2%)도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23.4%)보다 12.8%포인트 많았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의 가상 대선 대결에선 안 교수 지지가 47.7%, 박 전 대표 지지가 38.3%로 나타났다. 지금의 한나라당 틀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 모두 필패(必敗)임을 예언하고 있다.

정권 탈환을 노리는 야권은 올해 12월 17일 통합신당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개혁 우파와 합리적 좌파를 포괄하는 ‘제3 정당’ 창당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극히 내부지향적이다. 정치세력으로서 외연(外延)을 넓히는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총선 물갈이론’이 나왔지만 이에 제동을 건 박 전 대표의 한마디에 쑥 들어가 버렸다. 야권은 수시로 만나 “함께 나가자”고 외친다. 하지만 박 전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몽준 의원, 그리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등 중도우파의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뭉치자’고 하는 모습은 도무지 볼 수가 없다. 서로 등을 돌리고 신경전이나 벌이는 모습에선 스스로 갇히고 닫힌 정당의 폐쇄성만 드러날 뿐이다.

한나라당은 북한 인권과 통일연구 관련 예산이 국회에서 야당에 의해 삭감당해도 구경만 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표류시키고 있다. 많은 국민은 “이 나라에 과연 여당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60% 가까운 의석을 갖고도 제 구실을 못하는 여당을 누가 또 지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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