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당신은 안과 밖이 같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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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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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전문기자
고미석 전문기자
사원 김아영은 상냥하지만 딸 김아영은 엄마가 묻는 말에 “몰라도 돼”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꽃집 주인 이효진은 친절하지만 엄마 이효진은 청소기로 소파에 앉아 있는 아들의 발을 건드리며 “이것 좀 치워봐”라고 짜증을 낸다. 친구 김범진은 쾌활하지만 아들 김범진은 과일 한 쪽 먹어보라는 아버지에게 말도 귀찮은지 손만 내젓는다. 부장 김기준은 자상하지만 남편 김기준은 양손에 짐을 든 아내를 향해 “아, 빨리 와!”라고 퉁박을 준다.

TV 공익광고 내 얘기같아 뜨끔

TV의 한 공익광고를 보면서 내 얘기인가 싶었다. 광고는 가족의 가치를 주제로 “당신은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인가요?”라고 묻고 “밖에서 보여주는 당신의 좋은 모습 집 안에서도 보여주세요”라고 권한다. 사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통화하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랑 대화하는지 짐작 갈 때가 있다. 방금 전까지 사근사근 누군가와 얘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이 토막토막 짧아지고 사무적으로 응답하는 경우를 보면 대충 가족이구나 싶은 게다.

‘지금까지 한 말을 모조리/되돌려 들려준다면/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걸/모든 변명 필요 없어/더 이상 말하기 힘들걸/사람의 마지막 말/부끄럽다는 한마디/또는 녹취할 수 없는/침묵밖에 없을걸’(김광규의 ‘녹취록’)

집안 식구들에게 무뚝뚝한 ‘안과 밖’은 그렇다 치고, 남에겐 모질고 제 가족에게만 천사처럼 자애로운 경우는 어떤가. 이런 인간이 만약 군림하는 자리에 오르면 주변 사람들에겐 치명적 시련이 닥친다. 나와 견해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에겐 무조건 너그럽고, 내 울타리 바깥엔 한없이 무자비한 ‘안과 밖’은 또 어떤가. 그런 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이 바로 선거 때다.

일본 소설 ‘면장선거’는 내가 지지하는 사람 눈에 있는 들보는 절대 보려 하지 않고, 상대 눈의 티는 무한 공격의 대상인 전쟁 같은 선거의 실상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인구 2500명의 작은 섬에서 4년마다 흑색선전과 노골적 비방이 난무하는 선거를 치른다. 전 면장파와 현 면장파는 매번 파벌을 나누고 치열한 다툼을 되풀이한다. 면 직원들도 서로 다른 생물 종처럼 일절 섞이는 일이 없다. ‘정권 교체’가 일어나면 좋은 보직도 우리 편에게, 공공 공사 발주도 당연히 같은 패거리에게 넘어간다. 동료가 아니라 적이며, 공무원이 아니라 이해집단이다. 꽤 익숙한 얘기라 소설의 힌트를 혹시 주변 나라에서 얻었는지 작가에게 누가 기회 있을 때 물어봐 주면 좋겠다.

그래도 소설은 4년에 한 번씩 묵은 감정을 폭발함으로써 주민들은 나른한 일상을 견뎌내고, 섬을 사랑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며, 몇 표 차로 뒤집히는 숙적이 있기에 물불 안 가리고 공공사업을 끌어온다고 반전을 준비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인물 뽑아야


서울시장 선거가 다가왔다. 서울시 주최 시민투표가 여름과 가을, 분기별로 벌어지는 셈이다. 그 비용을 최종 부담하는 시민들은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 소설처럼 다들 서울을 지독히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기고 죽기 살기로 득표 전쟁도 하는 것이라 믿고 싶다. 리얼리티 쇼처럼 풍성해져 가는 선거 이벤트의 뒤끝엔 무엇이 남을까. ‘안과 밖’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뽑히고, 같은 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좋은 모습을 다른 모든 시민에게도 보여주길 희망할 뿐이다. 딱 두 패로 나뉘어 고함지르는 운동장에서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보시라./버스를 타더라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앞만 보며 추월과 속도의 불안에 떨지 말고/창 밖 풍경을 바라보시라./기차가 아름다운 것은/앞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한 사람의 천 걸음보다/더불어 손을 잡고 가는 모두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니/앞만 보지 말고 바로 옆을 보시기 바랍니다.’(이원규의 ‘옆을 보라’)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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