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팔레스타인 국가승인 요청의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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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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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국제부
구자룡 국제부
20일 개막하는 올해 유엔 정기총회의 최대 화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유엔 회원국 승인 여부 표결이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은 23일 총회 연설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지위 승인을 호소할 예정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신들이 살던 땅을 빼앗기고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터전이 제한됐다. 이번 국가지위 승인 요청에는 63년의 국가 없는 설움을 풀겠다는 숙원이 담겨 있다. 국가로 인정되면 이스라엘과의 투쟁에서 무장저항 단체로나 인식돼 온 팔레스타인이 1993년 자치정부를 세운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는다.

하지만 회원국 지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하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혀 회원국 지위 획득은 난망이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이 국가 지위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유엔총회에서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을 얻으면 ‘표결권 없는 옵서버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 등 유엔 기구의 정식 회원국이 될 수 있다.

옵서버 국가가 가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구는 국제형사재판소다. 팔레스타인이 회원국이 되면 숙적 이스라엘과의 대결 양상은 새 국면을 맞는다. 지금처럼 외롭게 이스라엘과 맞서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땅을 점령한 이스라엘을 재판소에 제소하고 이론적으론 이스라엘군 병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의 분쟁은 국제화하고 국제 법률적인 문제로 전환된다. 이스라엘로서는 악몽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이 되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공존을 위해 요르단 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을 폐쇄하겠다던 계획을 바꿔 정착촌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공언한다. 갈등과 분쟁 수위가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미국 행정부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한 해 약 6억 달러의 지원을 감축 내지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워싱턴의 팔레스타인 사무소도 폐쇄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결국 자치정부 수립 이후 다져지던 이-팔 긴장완화 분위기가 역류의 급물살을 탈 우려도 없지 않다.

압바스 수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같은 큰 족적을 남긴 지도자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야망과 이상 속에는 적지 않은 현실적인 대가가 있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요즘 중동 정세를 보면 ‘정치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곡예’라는 말이 실감난다.

구자룡 국제부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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