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올 것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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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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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말은 애매해서 풀이하기 어렵거나 엇갈리는 해석을 낳을 때가 적지 않다. 1961년 5월 16일 아침 쿠데타군이 청와대에 몰려와 면담을 요청하자 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고 했는데, 이 역사적인 발언에 대해서도 해석이 크게 엇갈렸다. 쿠데타 세력과 윤보선 비판 세력은 이 말을 “윤 대통령이 쿠데타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방조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준하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쿠데타가 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한 말은 절대 아니고 사회가 극심한 혼란 상태였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지난해 술회했다.

▷윤 전 대통령이 50년 전에 한 것과 똑같은 말이 8일 밤 KBS가 생중계한 추석맞이 특별기획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은 ‘안철수 현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지지도가 치솟는) 안 교수를 보면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스마트 시대가 왔는데, 정치는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지 않나. 정치권에 대한 변화 욕구가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고여서 썩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이 안철수 신드롬을 예상했다는 것인지, 닥치고 보니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1992년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 대통령은 1995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 김영삼 대통령이 정원식 전 총리를 지지하는 바람에 ‘왕따’ 신세였다. 그 후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됐지만 그의 체질은 ‘여의도 정치’와 맞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둔 것에 대해 ‘정치권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과 헌법 개정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발언에 “여의도 정치가 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민주주의를 역행시킨 대통령이 ‘적반하장’ 격의 말만 늘어놓았다”고 쏘아붙였다. 국민이 정치를 극도로 불신하는 상황에 대해 이 대통령이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을 최대한 설득해 국정의 성과를 높일 책무가 있음에도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한 능력과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야당들도 대통령을 비판할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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