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훈]쓴소리에 문 닫아버린 속좁은 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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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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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산업부
김상훈 산업부
세계 최대의 PC 업체인 HP가 지난달 PC 사업을 분사(分社)할 수 있다고 밝혀 충격을 던졌다. 또 HP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더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애플과 구글이 모바일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는 상황이라 이는 HP의 ‘항복 선언’처럼 들렸다.

이 소식이 발표된 지난달 19일 기자는 로마제국과 HP의 공통점을 주제로 한 칼럼을 썼다. 지배층의 부패, 외부세력에 대한 의존, 위기에 눈감는 착각. 올해 2월 다녀온 중국 상하이 출장에서 본 HP의 모습을 지적한 것이었다. 당시 HP 임원들은 내용이 완전히 똑같은 행사를 미국과 스페인, 중국에서 번갈아 열었다. 저녁에는 상하이 중심가의 101층 빌딩 전망대에 HP 임원들을 위한 전용공간을 설치하고 그들만의 디너파티도 열었다.

미래 성장을 위한 신무기라던 ‘터치패드’ 개발은 그들이 인수한 팜 직원들에게 일임했다. HP 임원은 누구도 이 사업을 설명하지 못했다. 주력 사업이던 노트북PC는 3년째 대량 리콜 사태를 겪었지만 HP 담당자는 “우리 제품이 최고”라는 주장만 되뇌었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PC 사업을 총괄하는 토드 브래들리 HP PSG(퍼스널시스템그룹) 수석부사장이 방한했다. HP 홍보팀은 브래들리 부사장과 한국 언론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동아일보는 초청받지 못했다. HP 측은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겠다는 의도인데 동아일보를 부르기에는 리스크(위험)가 컸다”고 설명했다. 뭐가 잘못 알려졌다는 건지 물었다. 본사 홍보팀이 필자를 “HP의 PC사업에 부정적이고, 곧 망할 듯 인식하는 기자”로 보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 원하는 얘기를 써줄 기자가 아니라서 인터뷰를 못하겠다는 얘기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HP의 PC 사업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래서 HP 측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 얘기는 꼭 들려주고 싶다. 1984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젊은 기자 마이클 모리츠는 ‘작은 왕국’이란 책을 쓰면서 애플을 취재했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처음엔 모리츠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러다 모리츠가 잡스에게 “왜 여자친구가 낳은 딸 리사를 인정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꺼내자 화를 내며 모든 취재를 거부했다. 리사는 잡스가 1990년대까지도 딸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실제 딸이다. 이후 잡스는 독단적 의사결정에 따른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듣기 싫은 얘기에 귀를 막은 결과였다.

HP의 위기를 지적한 본보 8월 20일자 A3면 기자의 눈.
HP의 위기를 지적한 본보 8월 20일자 A3면 기자의 눈.
그 잡스가 다시 돌아와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다. 물론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올해 4월만 해도 아이폰이 10개월 분량의 개인 위치정보를 저장해 놨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당시 잡스는 해명 인터뷰 매체로 월스트리트저널을 선택했다. 해당 문제를 가장 비판적으로 보도하던 곳이다. 듣기 싫은 소리에 귀를 막는 세계 최대 PC 업체 HP의 ‘삼류 대응’이 아쉽다.

김상훈 산업부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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