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직선거 후보 ‘단일화 거래’ 법으로 차단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를 교육감 후보에서 사퇴시키기 위해 벌인 뒷거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곽 교육감 측은 박 교수 측에 7억 원 제공, 교육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 서울교대 총장 출마 시 지원, 교육청 인사 때 박 교수 측 추천 인사의 안배 등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후 대부분 그대로 진행됐다. 7억 원 중 2억 원이 박 교수에게 건너갔다. 나머지 5억 원은 올해 말에 주기로 했다는 것이 검찰 수사 내용이다. 박 교수는 올해 6월 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에 위촉됐고, 올해 5월에는 서울교대 총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후보 매수에는 금품과 재산상의 이익은 물론이고 공사(公私)의 직(職) 제공이나 제공의 의사표시까지 포함돼 있다. 곽 교육감 측의 약속이 사실이라면 모두 후보 매수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곽 교육감은 박 교수에게 “사퇴하지 않으면 진보 민주진영에서 매장당할 것”이라는 압박도 곁들였다고 한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 것이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는 막후에서 거래조건에 합의한 뒤 이른바 진보좌파 성향의 명망가와 단체들을 동원해 후보 단일화 이벤트를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명망가와 진보단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유권자 기만에 이용만 당했는지, 막후의 협상에 직간접으로 개입했는지는 검찰이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 후보 매수와 관련한 지시 권유 요구 알선도 선거법에 저촉되는 위반이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작년 지방선거 당시 후보 등록과 함께 선거기탁금을 내고 나서 후보 단일화 등을 이유로 사퇴한 후보가 박 교수를 비롯해 87명이나 된다. 후보 등록 후 사퇴하면 선거기탁금을 돌려받을 수 없고, 선거운동에 들어간 비용도 모두 날리게 된다. 1억 원 이상의 선거비용을 썼다고 선관위에 신고한 후보만도 17명이다. 적지 않은 재산상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아무 조건 없이 후보 단일화를 위해 사퇴한다는 것을 선의(善意)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끝까지 선거를 치렀다가 선거비용 보전이 가능한 비율 이상의 득표에 실패해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을 피하려고 자진 사퇴를 택한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곽 교육감과 박 교수의 예에서 보듯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선거비용 보상이나 자리 제공 약속과 같은 뒷거래가 오갔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뒷거래는 은밀히 이뤄지기 때문에 서로 입을 다물면 밝혀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번 기회에 선진국처럼 공직후보 등록 후에는 사퇴를 할 수 없게 해 후보 단일화를 위한 뒷거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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