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승부조작 소문 무시하더니… 프로축구연맹의 자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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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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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선수는 승부를 조작하고 감독은 그 선수의 가족을 협박해 돈을 뜯었다. 승부조작으로 선수들이 구속돼 수비수가 대신 골문을 지켰고 감독은 벤치를 떠나 군검찰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

출범 28년째인 한국 프로축구의 암울한 현주소다. 한마디로 막 가자는 분위기다. 승부조작 파문에도 경기장을 찾아 응원전을 펼치던 팬들은 ‘답답하다. 도대체 이젠 누굴 믿어야 하느냐’며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이 지경인데 프로축구연맹은 계속 헛발질만 하고 있다. 11일 발표한 대책안이란 것도 당초 예정된 2013년 승강제 도입 등 승부조작과는 직접 관련성이 없거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수철 상주 상무 감독이 선수 가족 협박 및 금품수수로 구속됐고 선수가 9명이나 끌려가 상무 출신만 모두 19명이 승부조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는데도 정몽규 연맹 총재는 “상무 퇴출은 없다”고 일찌감치 못 박아 논란을 키웠다. 선수들의 군 문제 해결 등 득이 많았던 상무의 퇴출은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승부조작의 한 축을 형성한 상무에 대한 장기적인 존폐 논의나 대안 마련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역 감독의 구속으로 소문은 또다시 사실이 됐다. 그동안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는 선수들의 동태를 감독이나 코치도 알고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구단이나 연맹도 마찬가지다.

범죄학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경영학에선 고객 한 사람의 불만을 방치하면 조직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지난해 중반 승부조작 소문이 나돌았을 때 선수는 “안 했다”고 했고 지도자와 구단, 연맹은 “증거 없다”고 손을 놨다. 첫 유리창이 깨졌는데 프로축구계는 ‘이번 위기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대처했다. 결국 더 많은 유리창이 깨져 프로축구의 존폐 위기까지 온 셈이다. 처음부터 대처했더라면 선수를 희생양 삼고 교묘하게 빠져나간 ‘몸통’ 조직폭력배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검찰 쪽 생각이다.

그런데도 프로축구계는 이렇다 할 변화의 조짐이 없다. 연맹은 “승부조작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주장할 뿐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극성팬들은 “리그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다 유리창이 모두 깨지게 생겼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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