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형주]만남과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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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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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 팝페라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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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라는 직업 특성상 해외 공연이 잦고 남들보다 비행기를 탈 일이 많다. 자주 방문하는 나라의 국제공항이 친숙할 정도다. 유럽의 중심 공항이라 할 수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이나 미국 뉴욕 JFK 공항. 일본 나리타 공항이 그렇다. 조국인 대한민국의 인천 공항은 두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친숙해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의 집 같다.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갖게 된 취미 중 하나는 공항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을 지켜보는 것이다. 어릴 적 별명 중 하나가 ‘호기심 천국’이었을 정도로 지금도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 공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세계 각국 다양한 민족의 사람이 뒤섞여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들을 수 있는 언어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각 민족 고유의 특성을 살피는 일 역시 다채롭다. 터번과 히잡, 차도르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의상을 구경할 수 있고, 공항 라운지 안에서 시간에 맞춰 기도를 드리는 유대인의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눈이 풀린 채 술주정을 부리다 공항 보안요원에게 제지를 받고 공항 한쪽 바닥에서 잠을 자는 사람, 비행기가 연착돼 항의하는 승객들 사이에서 묵묵히 여행가방 위에 앉아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하는 사람 등등…. 제각각의 사연으로 국제공항은 그 자체가 ‘작은 세계’다.

이별은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

하지만 공항은 많은 사람에게 즐겁기보다는 슬픈 공간이다. 나는 공항에서 곧잘 눈시울을 적시곤 하는데 출국장에서의 ‘이별’ 장면 때문이다. 헤어지는 사연은 다 다르겠지만 그 순간엔 국가나 민족을 떠나 헤어짐을 슬퍼하며 눈물짓는 인간 본연의 모습밖에는 없다. 출국장 출입구 안에 들어가기 전에 수없이 작별인사를 했을 텐데도 쉽게 발을 뗄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왜 그리도 슬픈지. 이런 모습을 여러 번 봤지만 필자는 아직도 볼 때마다 내 일처럼 너무 슬프다.

아홉 살 때 호주 시드니로 여동생과 단둘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이후 열여섯 살에 미국 뉴욕으로 혈혈단신 유학을 떠나는 등 수없는 출입국 과정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왔기 때문인 듯하다. 가족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있는 에이전시 직원들 또는 친구들과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다.

헤어짐이 슬픈 것은 공항에서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슬프다. 부모님의 어깨를 주무르다가도 언젠가 부모님과 영영 헤어져야 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면 슬픔을 넘어 공허하기까지 하다. 뜨겁고 열렬하게 사랑했던 연인과의 헤어짐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안녕’이라는 외국어 단어만도 수십 가지이며 외국에 나가 그 나라의 언어를 처음 배울 때 제일 먼저 듣고 배우는 단어 역시 ‘안녕’이다. 만날 때 쓰기도 하지만 헤어질 때도 쓴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힘들지만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고 사는 나에게 이별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얼마 전 집에서 방 정리를 하다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반을 발견했다. 올해 9월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4주기가 된다. 당장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조차 그가 떠난 지 몇 년이 지났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했을 정도로 잊고 지냈다. 천수를 누렸든,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든 많은 유명인의 부고가 언론을 장식하지만 이별의 아픔을 세상이 공유하는 시간은 잠깐이다.

세상을 떠나는 궁극의 이별뿐 아니라 대중의 관심과 이별하는 유명인도 많다. 유명인과 대중의 만남은 화려하지만 이별은 누구의 관심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아픔은 고스란히 유명인 개인의 몫이다. 게다가 그런 이별의 순간은 예고나 전조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일부 유명인은 대중의 관심과 이별하는 충격 때문에 궁극의 이별을 택하기도 한다. 나 역시 닥쳐올 여러 이별의 순간을 떠올릴 때 슬픔에 몸서리치기에 이런 종류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이해한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는 일이 두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매 순간 최선 다하며 살아갈 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우리 모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또한 사람들은 매일 스스로와의 이별을 겪는다. 오늘은 어제와의 이별이고, 내일은 오늘과 이별해야 찾아올 것이다. 그 때문에 이별은 낯설기보다는 익숙한 것이며, 어쩌면 만남보다 잦은 것일지 모른다.

이별과 이별의 두려움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잃게 될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다.

며칠 후면 2011년의 절반과 완전히 이별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순간순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한다. 인생의 끝이자 세상과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적어도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후회가 남지 않는다면 만날 때 반갑게 ‘안녕’ 인사를 건넸듯 헤어질 때도 반갑게 ‘안녕’ 할 용기가 생길 것 같다.

임형주 팝페라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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