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슈퍼 약 판매 불발’ 정부의 공허한 내수 활성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7일 03시 00분


올해 2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밤 10시쯤 갑자기 배탈이 나서 소화제를 사먹으려는데 약국 문 연 데가 어디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전국의 약국 수는 2만1000개이지만 동네 편의점과 슈퍼를 합치면 10만 개가 넘는다”며 의사의 처방이 없어도 되는 약을 자유롭게 팔도록 하면 소비자 편익, 동네 슈퍼의 수입 제고, 약값 인하, 일자리 창출과 국내총생산(GDP) 상승의 일석오조(一石五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2년 4개월이라는 장수 재임기록을 세우면서도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을 설득하지 못했던지 슈퍼 약 판매 허용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1일 이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내수를 어떻게 활성화시키는가에 관심을 갖고 앞으로 잘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경제성장을 수출 위주의 대기업과 제조업이 주도했지만 그 과실이 서민층까지 고루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내수가 활성화해야만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경기회복의 온기를 서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국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서비스산업 활성화 방안인 일반의약품(OTC) 슈퍼 판매가 대한약사회의 강력한 반발로 또 무산되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서비스산업 활성화 중 가장 쉽다고 여겼던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도 안 되는 마당에 다른 서비스산업 규제를 풀어 내수 활성화를 하겠다면 어떤 국민이 믿겠는가?”

현 정부는 2009년 초 윤증현 장관 취임 때와 작년 가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그리고 최근 박재완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때를 비롯해 여러 차례 내수 활성화를 강조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득권 집단의 ‘밥그릇 지키기’도 원인이지만 정부 내에서 비전과 전략을 공유하지 못하는 장관들이 많아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해관계자와 갈등을 조정할 리더십도 부족하다.

의료 분야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몰린다. 의료시장에 민간자본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면 외국인 환자를 국내로 끌어들이는 의료관광산업을 일으킬 수 있다. 의료시장 진입개방 역시 ‘서민 보호’를 내세운 반대론을 뚫지 못한다. 국부(國富)를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는 일을 가로막으면서도 ‘서민 보호’라고 큰소리를 치니 답답할 뿐이다. 이 정부는 이런 이념적 허구(虛構)부터 깨야만 국정을 성공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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