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朴, 위기 공감했으면 ‘극복의 동반자’ 돼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4일 03시 00분


여권의 지분을 나눠 가진 이명박(MB)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단독회동은 현 정부 출범 후 일곱 번째다. 작년 8월 회동을 제외하곤 매번 개운치 않은 뒷말이 나왔지만 이번 만남에서는 민생 살리기와 국정동반자 분위기 조성을 위한 대화들이 오갔다고 한다.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지 않아 민심 이반이 심각해 이대로 가다가는 여권이 공멸한다는 위기의 공감대를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4·2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삶에 지친 국민이 현 정부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내수 활성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두 사람이 화두로 삼은 ‘민생 살리기’가 실적을 내놓지 못하면 이 대통령의 국정 실패로 끝나지 않고 박 전 대표의 대선 행보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는 어제 회동에서 “한나라당은 분열보다는 통합으로 가야 한다. 모두 하나가 돼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나라당에선 국정의 주도권을 쥔 친이(親李)마저도 분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정책노선의 차이를 넘어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줄서기에 바쁘다. 국민은 한나라당의 친이, 친박(親朴) 갈등에 넌더리를 낸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계파에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모처럼 공감한 통합의 대의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그치고 말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당직이 아니더라도 제 나름대로 할 수 있지요”라고 운신의 문을 열어놓았다. ‘은둔형’ 스타일에서 기지개를 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박 전 대표가 보여준 ‘핍박받는 공주’ 이미지로는 대선가도의 돛에 바람을 모으기 힘들다. 그는 여당 내 ‘야당’의 역할을 하면서 반(反)MB 정서를 흡수했지만 야권 대선 주자군에서 치고 올라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대중적 지지율이 여전히 1위이기는 해도 ‘정권 교체’가 ‘정권 재창출’ 요구를 앞지르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박근혜표 비전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정권창출의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승리의 여신이 그를 외면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 ‘노명박’이란 조어(造語)가 유행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과 국정 실패가 이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수훈갑’이었다. 세간에는 노 전 대통령이 지금의 이 대통령을 만들어 준 것처럼 이번엔 현 정권의 지지부진과 한나라당의 분열이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킬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이런 경고를 건성으로 듣는다면 동반 패배의 길로 들어서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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