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쩌다가 ‘동업자만 있는 청와대’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30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MB)의 대선캠프 출신인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되자 청와대 내부에는 “올 것이 왔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그동안 소통, 동지애, 공감이 부족했다. 청와대에 동지(同志)는 없고 동업자만 있다는 외부 평가를 뼈아프게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은 전 감사위원의 행태는 MB 측근의 위세를 앞세워 이득을 챙긴 ‘동업자 정치’의 단적인 사례다.

현 정부의 정치 스타일을 ‘동업자 정치’라고 보는 시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전부터 여권 인사들이 정권의 성공을 위해 사심 없이 일하고 희생하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에게 김대중 김영삼 양김(兩金) 씨처럼 정치적 가신(家臣)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권 자체가 정치적 신념과 철학보다는 임기응변식으로 국정에 대처해온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여권 실세들은 요즘 주요 자리 인사를 놓고 ‘자기 사람 챙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학 총장 선거에 뛰어든 MB 측근 인사가 청와대 등의 배경을 내세워 물의를 빚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서울 강남권 공천을 ‘찜’해 놓았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동업자 정치’의 여러 단면이다. 이 대통령은 총선에 출마할 사람은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주문했지만 내부에서는 “정세가 유동적인데 급하게 서두를 일 있나”라는 시큰둥한 반응도 없지 않다. 대통령의 말에 영(令)이 서지 않는 임기 말 증후군에 벌써 빠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주 “행복한 퇴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청와대 구성원과 MB 측근들의 얼굴에는 결연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집권 4년차가 되면 안 그래도 정권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마당에 청와대 안팎에 ‘동업자 정치’가 판을 치면 남은 21개월의 임기 동안 안정적으로 국정을 끌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개편부터 서둘러야 한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 국정을 책임지고 ‘권력형 게이트’를 방지할 정예들로 청와대 전열을 정비하고 업무 분위기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 당청 관계를 비롯해 정국 전반을 조망해야 할 정무 라인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미적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은 전 감사위원 사건은 임기 말 청와대에 울리는 강력한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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