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진수 비리’ 개인문제일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8일 03시 00분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그룹으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감사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이번 사건은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 정권의 ‘측근 인사’ ‘보은(報恩) 인사’에서 비롯된 권력형 비리다. 은 씨는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친위 그룹인 ‘안국포럼’의 핵심 멤버로 ‘BBK 주가조작 사건’ 대책팀장으로 활약했다. 그 공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 자문위원을 거쳐 2009년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임명됐다.

이 대통령은 그제 이례적으로 민정수석비서관실을 찾아가 “우리와 관련된 사람이나 일일수록 더욱 철저하고 엄중하게 조사해 국민 앞에 의혹을 투명하게 밝혀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이 엄중 조사를 지시했다고 ‘측근 인사’ ‘보은 인사’의 잘못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감찰해야 할 감사위원에 대통령 측근을 보내는 인사는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옳다. 이 대통령은 민정수석을 지낸 정동기 씨를 올해 초 감사원장으로 내정하면서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킬 적임자”라고 내세웠다. 여론의 비판에 부닥친 여당 지도부가 정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자 이 대통령이 한동안 화를 내 지도부를 전전긍긍하게 만든 적도 있다.

현행 감사원법 15조는 ‘감사위원이 자신과 관계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심의에 참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 씨는 2005년부터 2년 동안 부산저축은행 고문변호사를 맡았는데도 2010년 초 저축은행 관련 감사 심의에 참여했다. 그는 스스로 특수한 관계임을 밝히고 관여하지 않았어야 했다. 판사 검사 변호사를 두루 거친 그가 자신이 관련된 사건에서 스스로를 배제하는 제척(除斥) 제도가 있음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감사원 측은 ‘자기와 관계있는 사항’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애매하다고 얼버무렸지만 이처럼 내부 검증 시스템이 허술했던 것이 바로 문제다.

양건 감사원장은 어제 “외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내부 직원들의 확고한 태도와 의지,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기는 해도 감사원장의 의지만으로는 독립성이 확보될 수 없다. 청와대를 비롯한 권부가 자제해야 가능하다.

과거 정권에서 임기 말이 가까워오면 대통령 주변으로부터 대형 비리가 터져 나와 레임덕을 가속화하고 국정 혼란을 초래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측근 게이트가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은 씨 사건이 터졌다. 청와대 등 권부 주변의 사람일수록 몸가짐을 새롭게 해야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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