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훈]그래도 원자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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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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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논설위원
이정훈 논설위원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매뉴얼 재앙’이다. 세계 어느 나라 원전도 10m가 넘는 지진해일(쓰나미)을 맞은 적이 없다. 원전은 냉각수를 확보하기 위해 해안에 짓기 때문에 반드시 해일 대비 설계를 한다. 이때 적용하는 해일 높이가 보통 3m. 그런데 대지진 후 상상도 못한 ‘물 더미’가 밀려와 원전의 비상발전실을 침수시켜 버렸다.

비상발전기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대응 매뉴얼에 없는 사태다. 그런데도 도쿄전력은 원자로를 살리려고 매뉴얼대로 움직이다 원자로 잔열(殘熱) 냉각에 실패해 수소 폭발과 노심 용융을 당했다. 창의력과 임기응변에 의한 대응을 하지 않고 교과서대로만 하다 실패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과장 왜곡되고 있다. 1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것은 쓰나미이고 어찌 보면 원전도 피해자다. 일본은 사후 처리만큼은 매뉴얼대로 잘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때는 원전 직원과 소방대원 등 59명이 숨졌으나 후쿠시마에서는 방사선 방호를 잘해 아직까지 1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후쿠시마 사태를 위험하게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두려움이다. 더 큰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와 모든 원전을 원자폭탄처럼 폭발시킬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가 사람을 얼어붙게 한다. 이러한 공포가 원자력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형성한다.

주식으로 큰돈을 번 투자자는 하나같이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이다. 외환위기나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처럼 많은 사람이 투매할 때 휩쓸리지 않고 주식을 사들인다. 한국이 세계 원자력 3강이 된 이유도 다른 나라가 모두 원전을 던질 때 포기하지 않고 버텼기 때문이다.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는 원전에 대한 큰 공포를 일으켰다. 이 사고를 전후해 오스트리아 미국 스웨덴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 등이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그러한 때 원전을 계속 지은 나라가 한국 프랑스 일본이었다. 한국은 일감 부족으로 사활의 위기에 빠진 외국 원전업체에 원전 공사를 몰아주고 그 업체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원전 국산화를 이뤘다. 이 교훈을 기억한다면 지금은 원전 존폐 논의가 아니라 원전 중흥을 준비할 때다.

상상할 수도 없는 쓰나미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원전 설계와 대응 매뉴얼에 추가해야 한다. 비상발전실을 절대 침수되지 않는 곳에 2, 3개 더 만들고, 모든 비상발전기가 돌아가지 않아도 격납용기 안에 물을 넣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또 다른 위험 요소를 떠올리고 이를 막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원자력을 ‘제3의 불’이라고 한다. 제1은 프로메테우스가 훔쳐온 신(神)의 불, 제2는 불꽃이 일어나는 보통의 불, 제3은 화염 없이 핵분열로 일어난 불(원자력)이다. 모든 동물이 불을 두려워할 때 인류는 인명과 재산을 잃으면서 불 다루는 기술을 발전시켜 석기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명을 만들어냈다.

원전이 사라져 제한송전을 하는 세상의 고통을 알고 싶다면 동(東)일본을 바라보라. 원전이 없으면 가정과 기업은 지금보다 몇 배의 전기료를 내야 할 것이다. 원자력은 무서우니까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무서우니까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아야 하는 대상이다. ‘성난 불’을 다룰 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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