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외자기업 고충을 정부는 들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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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3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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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권희 논설위원
홍권희 논설위원
요즘 미국계 전자상거래업체인 G마켓의 투자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박주만 G마켓 사장은 “국내 중소영세상인의 해외 판매를 돕기 위해 1단계로 200억 원 이상을 들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지으려는 창고의 땅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농산물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려던 계획이나 청년층 창업교육을 확대하려는 구상은 일부만 추진되고 있다.

박 사장은 “계획대로 투자를 하자고 미국 본사를 설득하기 어려운 처지”라고 말한다. 계열사인 옥션과의 합병 일정이 엉킨 탓이다. G마켓과 옥션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미국 이베이에 2009년과 2001년에 각각 인수된 ‘한 지붕’ 기업이다. 이베이는 두 계열사 살림을 합치고 경쟁력을 키워 아시아태평양지역 진출의 거점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G마켓은 지난해 11월로 잡았던 옥션과의 합병을 무기 연기했다. 정호열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계열사끼리의 합병은 간이심사 대상이지만 G마켓-옥션 합병은 일반심사 대상으로 정해 철저히 심사할 것”이라고 언론에 귀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G마켓 측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이베이는 G마켓 인수에 13억6000만 달러(약 1조5000억 원)를 투자해 정부의 환대를 받았다. 그해 한국이 유치한 외국인직접투자(FDI)의 12%였다. 합병 불발로 초대형 FDI가 파국을 맞는다면 투자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고 정부는 외국인투자가의 비난과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 직접 공장을 짓는 그린필드형보다는 인수합병(M&A)형, 신규투자보다는 증액투자가 많은 게 선진국형 FDI”라고 말한다. 이베이의 투자는 이런 조건에도 잘 맞는다.

G마켓은 “이베이의 G마켓 인수를 공정위가 승인하면서 내린 5가지 조건을 이행했으므로 공정위가 합병 신청을 다시 정밀 심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2009년 백용호 위원장(현 대통령정책실장)이 이끌던 공정위는 ‘G마켓과 옥션의 기업결합에 따른 경쟁제한 우려는 제한적이거나 단기적’이라고 판단해 조건부 승인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2009년 G마켓의 불공정거래행위가 적발됐으므로 앞으로 G마켓의 시장집중도를 철저히 점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G마켓 측은 “5가지 조건과 무관한 불공정거래 사건을 구실로 합병 자체를 재심사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에 어긋난다”고 맞선다.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 조화로운 해법을 찾는 숙제를 신임 김동수 공정위원장이 떠맡았다.

외국계 기업 사이에서는 공정위의 태도 변화를 외자(外資)에 대한 차별대우로 풀이하기도 한다. G마켓도 국내 다른 대기업들처럼 정부와 국회에 로비를 하지 못해 정부의 뭇매를 맞는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한국IBM은 1967년 설립돼 포스코보다 역사가 1년 더 길고 한국HP도 27년이 돼가지만 여전히 외국 기업으로 취급된다는 불만도 있다. 미국에서는 미국에서 생산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미국 기업으로 본다.

지식경제부는 “국내에 진출한 외자기업이 투자를 증액하게 하겠다”면서 ‘애로해결 체제’를 가동했지만 G마켓의 고충은 전달되지 않았다. G마켓 박 사장은 “주변에서는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청와대에 이야기해 보라’는 조언도 하지만 한국 기업으로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올해 외자 150억 달러 유치를 목표로 해외에서 뛰는 나라에서 정부와 대형 외자기업 간의 소통이 상상 이상으로 부족하다는 게 놀랍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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