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태훈]형사재판도 소송 당사자에 비용 부담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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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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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사회부
이태훈 사회부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데도 돈이 든다. 개인 간 다툼이 일어났을 때 책임의 범위를 따지는 민사재판은 물론이고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리는 형사재판에서도 소송비용이 발생한다. 증인들에게 지급하는 교통비나 외부 전문가에게 주는 감정비, 변호사 비용의 일부가 모두 소송비용에 포함된다.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에는 소송비용을 누가, 어떻게 분담해야 하는지가 자세히 규정돼 있다. 민사재판에서는 ‘패소한 당사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고 이는 실제 판결을 선고하는 재판에서 예외 없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형사재판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형사소송법에 ‘형을 선고할 때에는 피고인에게 소송비용의 전부나 일부를 부담하게 해야 한다’(186조)는 명문 조항이 있지만 실제 선고공판에서 소송비용을 판결 주문에 넣는 판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법원과 검찰에서 고위간부로 일하다 퇴직한 변호사들이 “법조인으로 일해 온 수십 년간 형사재판에서 소송비용을 선고한 판사는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이러다 보니 일부 피고인은 공판중심주의 활성화를 틈타 공판을 고의로 지연시키기 위해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거나 자기 사람을 증언대에 세워 허위 내용을 증언하게 하는 폐해가 늘고 있다. 소송비용이 아무리 올라가도 피고인에게 재판비용을 내라고 판결하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피고인들이 소송비용 증가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형사재판 소송비용 분담 조항이 사문화되면 세금 낭비는 물론 재판에 혼선을 가중시켜 형사사건의 실체가 덮일 수도 있다. 해당 사건으로 피해를 본 범죄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가 돌아갈 우려도 있고 피고인을 법정에 세운 검찰도 타격을 입게 된다.

지난해 말 부산지검은 술을 팔고 일일접대부를 고용해 영업을 하다 단속 경찰관까지 폭행한 노래방 주인 A 씨를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A 씨는 불법 체포를 당했다고 혐의를 부인한 뒤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고 허위 증언을 유도한 정황까지 보였다. 이미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탄탄하게 확보한 검찰은 A 씨가 소송 지연 전략을 폈다고 판단하고 재판부를 설득해 피고인에게 유죄와 함께 소송비용 부담 선고가 내려지도록 했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자기방어권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재판부를 속이거나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소송비용을 증가시키는 피고인에 대해서는 그 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국민의 혈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길일 것이다.

이태훈 사회부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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