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제역 확산, 정부 정치권 농가의 공동책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6일 03시 00분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口蹄疫)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어제까지 구제역 발생 지역은 경북 경기 강원 인천 충남 충북 등 6개 시도, 42개 시군으로 늘었다. 서울과 호남, 경남 지역도 안심하기엔 이르다. 소와 돼지 82만 마리가 매몰됐거나 곧 매몰된다. 도살처분 보상금 등 직간접 피해액은 1조 원으로 이미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로 기록됐다.

구제역은 소 돼지 양 사슴 등 발굽이 2개로 갈라진 동물에게 발생하는 가축전염병이다. 폐사율이 5∼55%에 이르고 일단 발병하면 치료약도 없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가축전염병 가운데 가장 위험한 A급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아시아 20개국, 아프리카 17개국, 유럽과 남미 각 1개국에서 발생했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가 ‘위험지역’으로 꼽힌다. 이번 구제역 바이러스도 이들 국가를 여행하고 돌아온 축산농가 종사자들에게 묻어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당국은 구제역 발생 직후 초동대응을 소홀히 했다. 출입국 관리당국은 구제역 위험국가를 방문한 축산 관계자들에게 검역 안내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부는 작년 5월 농장주 수의사 등 축산 관계자들의 여권 기록을 데이터베이스(DB)로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농림수산식품부와 법무부는 DB를 공유하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검역 관리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고 구제역 위험국을 다녀와도 파악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구제역 전염 예방책을 강화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은 작년 6월 국회에 발의됐으나 여야 정쟁 틈바구니에 묻혀 있다.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은 어제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위한 명분을 축적하고 논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대충대충 구제역 방역과 도살처분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 타령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음모론’으로 정치적 논란을 키우는 구태(舊態)는 한심하다.

축산인들은 해외여행 때 자주 찾는 중국과 동남아가 구제역 빈발 지역인데도 경각심이 부족했다.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외국을 다녀온 관계자 2만6000명 중 9400명은 입국 시 검역 절차를 밟지 않았다. 결국 이번 구제역 사태는 정부 지자체 정치권 축산인의 무신경이 키운 것이다.

사람과 물자의 국경 이동이 급증하면서 가축전염병 확산 위험성이 커졌고 수습도 쉽지 않다. 구제역 같은 가축전염병은 안보처럼 철저한 사전 대비가 중요하다. 정부는 가축전염병 방역을 위한 근본대책을 재수립해야 할 것이다. 축산농가는 방역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정치권도 말로만 ‘민생(民生)’ 운운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가축법 개정안부터 통과시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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