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건설 매각 혼선, 채권단 실력 그 정도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2일 03시 00분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가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했다. 지난달 29일 우선협상 양해각서(MOU)를 맺은 지 20여 일 만의 백지화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자금 5조5100억 원 가운데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 원의 출처 의혹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이 채권단의 판단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민사 및 형사소송 등 법정공방도 불사(不辭)하겠다며 채권단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자체 보유 현금은 약 1조5000억 원으로 입찰액의 29%에 그쳤다. ‘재무적 투자자’를 통해 끌어들인 외부자금의 상당액이 인수자금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혹에 대해 현대그룹은 납득할 만한 소명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본계약 체결을 강행하면 현대그룹과 현대건설의 동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서 나왔다.

현대건설 매각 파행에는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의 책임도 크다. 채권단은 입찰 과정에서 보유지분 매각에 따른 회수 금액을 높이는 데 급급해 현대그룹이 제시한 인수자금의 건전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입찰액이 자금조달 계획이나 재무건전성보다 뒷말이 덜 나오는 객관적 잣대였기 때문이라지만 부실심사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내 최대 건설업체인 현대건설의 새 주인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드러난 채권단의 실력은 함량 미달이었다.

기업의 인수합병(M&A)은 ‘양날의 칼’이다. 다른 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는 반면, 실패하면 자칫 모기업까지 휘청거리는 위기에 빠진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한 뒤 바로 자금난에 몰려 결국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매각하게 된 것은 무리한 M&A의 후유증을 여실히 보여준다.

채권단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그룹에 넘길지, 아니면 매각작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지를 연말쯤 결정할 예정이다. MOU 해지에 대한 현대그룹의 반발, 입찰 과정에서 깊어진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간의 감정 대립,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처리 문제를 감안할 때 상당 기간 난항이 예상된다. 채권단은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잡음을 최소화하면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기술 등을 가진 현대건설이 세계 유수의 건설업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매각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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