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전쟁범죄에 눈감는 평화운동은 위선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6일 03시 00분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어제 국회에서 만장일치에 가깝게 통과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은 ‘한반도 긴장 완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의 표현을 담자고 요구하다 여론을 의식해 전날 국회 국방위에서 채택된 결의안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는 쪽으로 물러섰다. 천안함 폭침 때 한나라당 주도의 반쪽짜리 규탄 결의안 채택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것과 비교하면 퍽 다행한 일이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언젠가는 실현해야 할 우리의 과제다. 그러나 북의 무자비한 포격으로 연평도가 불바다로 변하고 무고한 우리 장병과 국민이 생명을 잃은 엄중한 상황에서 긴장 완화니 평화체제 운운하는 것은 호사스럽게 들릴 정도다. 더구나 우리의 군사훈련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의 공격을 자초했다는 인식은 설사 그 선의(善意)를 인정하더라도 북의 실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눈감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북은 경제협력이나 문화교류, 이산가족 재회, 통일 같은 ‘민족 내부 문제’는 남한과 대화하되 핵, 체제 인정, 평화협정 같은 ‘평화 문제’는 미국과 상대하겠다는 전략을 일관되게 구사하고 있다. 1973년 12월 김일성 연설에서 이를 천명했고, 1974년 3월 최고인민회의 명의의 대미(對美) 서한을 통해 공식화했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때 나온 5개 항의 6·15공동선언은 북이 설정한 이 구도를 그대로 추인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선언은 평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북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미국 전문가에게 공개한 것이나 연평도 도발을 자행한 것도 남한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이 원하는 논의의 장(場)에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이 설정한 이런 구도를 깨지 않는 한 남북 간의 평화문제 논의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범좌파 세력은 평화가 자신들의 전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돈으로 산 평화’의 미몽에 빠져 한반도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착각했다. 그 대가는 북의 핵 무장으로 되돌아와 한반도 평화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북은 끊임없이 대남(對南)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 우리에겐 과거와 같은 방식의 굴종을, 미국엔 핵보유국과 체제 인정을 강요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반민족 반인류 범죄자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김정은도 이미 민족범죄자로의 발을 떼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민족 살인’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이 북한 3대 세습의 실체다. 국가의 명운이 촌각에 달린 전시(戰時) 상황에서 북의 전쟁범죄에 눈을 감고 평화를 띄우는 것은 국가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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