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형주]‘순정녀’ 장희빈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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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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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동이’가 많은 기록을 남긴 채 종영됐다. ‘동이’는 시청률 30%를 넘나드는 인기를 끌며 줄곧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올해 방영된 한국 드라마 중 최고의 수출액을 자랑하면서 해외 판매 1위 드라마로 꼽히기도 했다.

‘동이’는 여러모로 필자와 인연이 깊다. 주제가 ‘애별리’를 부르면서 ‘쾌걸 춘향’ 이후 사극 관련 주제가만 세 번째 맡게 됐다. ‘찔레꽃’ ‘압록강은 흐른다’ 등 시대극 주제곡도 여럿 부른 까닭에 ‘사극-시대극 주제가 전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동양적인 오(五)음계를 기본으로 한 국악 반주에 성악풍의 노래가 겹치는 한국적 크로스오버가 유행하면서 팝페라테너인 필자의 스타일과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팝페라는 클래시컬 크로스오버의 대표적 장르이기 때문이다.

주제가를 불러서뿐만 아니라 필자는 ‘동이’의 열혈팬이기도 했다. 해외 공연이 많은 나로서는 흔히 말하는 ‘본방 사수’를 매번 하기 어려웠지만 인터넷으로 다시 보기를 하며 꼼꼼하게 챙겨 보았다. 어릴 적부터 매우 관심이 많았던 희빈 장씨(장희빈)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여서다.

그동안 장희빈은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는 희대의 악녀로 그려졌고, 인현왕후는 지고지순한 성녀로 그려졌다. 하지만 ‘동이’는 진부한 권선징악 캐릭터 설정을 비틀고 인간미를 불어넣었다. 장희빈은 사랑 앞에서는 여리지만 권력 앞에서는 지략적이고 정열적인 21세기형 여성의 모습으로 새롭게 그려졌다. 인현왕후 또한 정도를 걷지만 권력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냉철한 왕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드라마 ‘동이’의 21세기형 해석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며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여태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다. 사약 사발을 발로 차거나 숙종에게 세자를 먼저 죽이고 오라는 섬뜩한 폭언을 퍼붓던 악녀의 모습 대신 숙종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며 담담히 죽음을 맞는 모습이었다. 주제가 ‘애별리’가 사랑과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도 이같이 진정한 사랑을 갖지 못하는 주인공 3명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많은 시청자와 누리꾼은 드라마에서 장희빈을 악독하고 표독스러운 ‘익숙한’ 모습으로 그려주길 희망했다. 결국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표독스러운 장희빈으로 돌아갔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필자는 역사를 좋아하는 외할아버지 아래에서 어릴 적부터 역사 이야기를 동화처럼 듣고 자랐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국사 연표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들려준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일이 즐거웠다.

장희빈을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 인현왕후전을 읽었을 때다.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신당을 차려놓고 화살을 쏘아 대는 모습은 어린 나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다. 당시 정선경 씨가 주연했던 드라마 ‘장희빈’의 이미지는 ‘복수의 화신’으로 극적인 인생을 산 장희빈을 주목하게 했다.

하지만 이후 ‘숙종실록’을 읽으면서 ‘인현왕후전’이 인현왕후의 시각 또는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편향적인 내용이란 것을 알게 됐다. 숙종실록은 인현왕후가 죽은 뒤 어느 날 장희빈에게 자진하라는 비망기를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너무나 갑작스러운 임금의 명령에 장희빈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서인들조차도 한때 국모였음을 감안하고 어린 세자를 봐서라도, 또 예전 연산군과 폐비 윤씨의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장희빈의 목숨만은 살려둬야 한다고 아뢰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숙종은 저돌적인 자신의 성격 그대로 일을 일사천리로 처리해버렸고 결국 장희빈은 어찌 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사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숙종은 드라마에서 그려진 모습처럼 우유부단한 왕이 아니었다는 점은 이미 실록 연구자들에게는 정설이다. 숙종은 오히려 왕권 강화에 목숨을 건 인물이었다. 남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계파정치의 갈등의 골을 없애기 위해 당시 남인을 대표하던 장희빈과 서인을 대표하던 인현왕후를 번갈아 가며 중전의 자리에 올려 힘을 실어준 것뿐이다.

기존 ‘악녀’이미지 재평가

그러나 정사 속에 미녀 장희빈은 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유일하게 ‘자못 아름다웠더라’라며 미(美)를 찬사한 기록은 너무도 명확하게 또 확실하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사를 기록한 실록에서 미에 대한 찬사를 들은 것은 장녹수도 황진이도 명성황후도 아닌 장희빈이 유일무이하다고 한다. 즉 실제 역사 속에서의 장희빈은 악녀 장희빈보다는 미녀 장희빈이었을지 모른다.

장희빈은 사약을 받고 죽었지만 훗날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됐다. 그녀의 아들 경종이 왕위에 오른 뒤 새로이 정치적 평가를 받았다. 역사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시선과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음악 역시 과거의 기록이지만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달리 되살아난다. 다만 역사와 달리 해석이 많아질수록 원래의 음악이 더 풍요로워진다. 역사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임형주 팝페라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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