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독대(獨對)정치의 유혹

동아일보 입력 2010-09-07 03:00수정 2010-09-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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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7년(1425년) 예문관 대제학 변계량 등의 진언을 받아들여 윤대(輪對)제도가 시행됐다. 동반 4품 이상, 서반 2품 이상 관직자들을 매일 대궐로 불러 한 사람씩 대면하며 국정에 관해 의견을 묻고 답하게 한 것이다. 좌우 신하들은 물론 사관(史官)까지 물리치고 이뤄지는 독대(獨對) 방식이었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솔직한 얘기를 다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독대에 긴절(緊切)하지 않은 얘기, 무책임한 얘기를 섞는 신료들이 자꾸 나타나는 바람에 윤대제는 시행 12년 만인 세종 19년(1437년) 폐지됐다(‘한국정치의 현상학적 이해’·김홍우 저).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명박 대통령이 1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 때 별도로 독대한 이후 여권에서는 갑자기 ‘김태호 빅카드설’이 모락모락 새어나왔다. 이날 면담에서 김 지사는 “민생을 살필 수 있는 더 큰 공부를 (중앙에서) 하고 싶다”며 6·2지방선거 불출마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후 “김 지사는 크게 쓸 사람”이라고 참모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8·8개각을 앞두고 김태호 카드에 대한 이 대통령의 깊은 관심을 잘 알고 있는 청와대 인사 검증 관계자들의 눈에 재산증식 의혹이니, 직원의 사택도우미 활용이니,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관계니 하는 것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1월의 달콤했던 독대가 8월의 김 후보자 낙마(落馬)와 이명박 정부의 위신 추락과 무관하다 말하기 어렵다.

8월 21일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단독 회동했지만,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일부 측근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대화가 있었다”는 정도를 전했을 뿐이다. 과거 회동 때마다 서로 딴소리를 하는 바람에 관계만 나빠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지만, 대통령과 유력 차기주자 간에 논의된 국가 대사(大事)를 개인 간의 만남처럼 묻어둬도 좋은가. 여의도에선 벌써 ‘4개항 합의설’ 운운하는 밀약설이 그럴싸하게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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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6·2지방선거 직후 차기 주자 중 한 명인 김문수 경기지사를 장시간 독대했고, 이에 앞서 2월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도 독대했다고 한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독대는 소통 확대라는 차원에서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어제 시장을 가보니 이렇더라, 정부에 대해 육두문자가 막 나오더라는 식으로 공식라인에서 들을 수 없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기 말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공식보고만 받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닥쳤음을 실감하게 된 것도 “큰일 났다”며 독대를 청한 윤진식 조세금융비서관을 통해서였다.

문제는 임기 말에 대통령은 레임덕을 막고 차기 경쟁 구도를 관리하기 위해 독대를 활용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김영삼 전 대통령도 그랬다. 그러나 독대는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권력실세들, 차기주자들 상호 간 의심은 물론 주군(主君)의 진짜 의도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독대를 통해 객관성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대통령에게 잘못 입력될 경우 국정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조는 애지중지한 신하 채제공뿐 아니라 정적으로 알려진 노론파의 중신 심환지에게도 비밀서찰을 보내 정국 안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 대통령의 독대정치는 특정 정파, 종교, 계층에 편향되지 않는 ‘공정함’이 전제된다면 약이 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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