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단명 총리와 세습 권력, 어느 쪽도 곤혹스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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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은 현재 일본 총리가 누구인지 알고 계시는가? 정답은 간 나오토 씨다. 취임한 지 1개월 반이 지났지만 다행히 아직 바뀌지 않았다.

日권력분산 전통에 총리 견제

일본은 지난해 역사적인 정권교체로 민주당 내각이 탄생했지만 8개월여 만에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사임했고 지난달 같은 당의 간 씨가 총리가 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사임 이후 4년이 채 안돼 다섯 번째다. 이유를 묻는 외국 친구들의 질문에 “일본은 생산성이 높아 총리도 양산할 수 있다”고 답했더니 “결함품의 회수도 빨라 양심적”이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다.

이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일본에서는 단명 내각이 예사로운 일이다. 재임기간이 7년 반에 이르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가 물러난 1972년 이래 38년간 총리가 22명 탄생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씨와 고이즈미 씨가 5년 반씩 재임한 게 이례적이고 나머지는 길어야 대략 2년 반 정도이다. 2개월로 초단명한 총리도 두 명이나 된다. 같은 기간 미국과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8명, 영국 총리는 8명이 나왔다.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총리(서독을 포함)도 각각 5명이고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재임 기간이 무려 16년이다.

일본의 총리는 왜 단명할까. 의회에서 총리를 선출하는 의원내각제는 영국이나 독일 모두 마찬가지다. 상원 선거가 없는 영국 독일과 달리 일본에는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선거가 있다. 총리가 헤쳐 나가야 할 관문이 많은 것은 맞지만 그 때문 만이라고는 하기 힘들 것 같다.

본래 일본에는 권력의 집중을 선호하지 않는 정치풍토가 있다. 여당 내에서조차 파벌끼리 나뉘어 견제한다.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면 총리를 교체함으로써 정권을 지킨 예가 많다. 권력을 서로 나눠 갖는 습관이랄까 서로 견제하는 문화는 최고 권력자인 총리를 소모품화하기 쉽다.

권력이 300년씩이나 세습된 도쿠가와 막부시대에도 실권은 막부의 각료에게 있었다. 형식상으로는 쇼군 위에 ‘만세일계’의 천황도 있었다. 권력 분산은 일본의 전통이었던 셈이다. 현대의 천황은 헌법에 따라 정치권력으로부터 분리돼 있지만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총리보다 훨씬 권위 있는 존재다. 쇼와 천황은 대략 64년 동안 권좌에 있었고 현재의 아키히토 천황 역시 즉위한 지 20년이 넘었다. 단명 총리의 뒤에는 강력한 관료제와 천황이 존재한다.

김일성-정일 父子국민을 핍박만

세습 천황제를 꼭 닮은 것이 건국 이후 60년 이상을 부자(父子) 2명이 지배한 북한이다. 내가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가까이서 지켜본 것은 1980년의 일이다. 아들 김정일은 무대의 전면에 나오기 전이었지만 노동당 간부가 “국가사업과 경제건설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대단히 현명한 분이다”라고 칭송했던 일이 떠오른다.

30년이 지나 또 그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려고 준비하는 중인데 그 역시 ‘현명한 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까. 북한 김씨 일가의 신격화는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천황을 떠올리게 하지만 절대 권력이라는 점에서는 천황제를 능가한다.

허약한 권력에 임기마저 짧은 일본의 총리는 국가의 난제를 좀처럼 해결하지 못해 세계가 불안한 눈빛으로 주시한다. 반면 권력이 강력해 종신제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리더는 국민을 위기로부터 구제하려는 생각조차 없고 세계를 불안하게 만든다. 어느 쪽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민폐의 정도는 북한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의 대통령은 어떤가. 한국의 권력자는 모두 일본 총리보다 강해 보이지만 재임 중에 쿠데타나 암살이 있었고 퇴임 후에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도 있었다.

내가 서울에 유학할 당시 하루라도 신문이나 TV에서 얼굴을 보지 않는 날이 없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사임 후에는 절에서 은둔생활을 했고 결국 구속됐다. 문제투성이의 권력 탈취였기에 인과응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예전에 그를 국빈으로 맞이하며 만찬석상에서 ‘불행한 과거에 대한 유감’을 전한 쇼와 천황은 아마도 하늘에서 깜짝 놀랐을 듯싶다.

지난해 여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장례식장에서 전 전 대통령과 그를 구속한 김영삼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등 3명이 나란히 헌화하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권력은 강하면 강할수록 내려놓는 순간 온갖 비판에 시달리게 돼 있다. 김일성 주석이 이를 뼈저리게 느낀 것이 스탈린 사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스탈린 비판’이었다고 한다. 김 주석과 그의 아들은 한국에서 되풀이된 권력 드라마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권력은 절대로 세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게 김씨 왕조가 얻은 교훈이었다면 참말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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