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송희진]내가 미국에 국궁장을 세우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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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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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인이다. 열 살 때 미국에 건너가 지금 44세이니 미국문화가 몸에 더 많이 배어있다.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한국을 잘 모른다. 초등학생 때부터 박사학위까지 받을 동안 철저한 미국인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미국사람으로 보였다.

오클라호마 주에 있는 대학을 다니던 중 나는 자기상실감에 빠지게 됐다. 전체 학생 6000명 중 한국학생은 6명이었다. 한국 사람이 모여 한국학생회를 만들고 임원을 뽑았다. 같이 모일 때마다 나는 “너는 한국 사람이지 미국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몹시 듣기 싫었다. 날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한국 친구는 물론 청소년기에 사귀었던 수많은 미국 친구와의 관계를 칼로 무 자르듯 모두 끊었다. 괴로운 일이었고 일생일대의 대사건이었다. 커다란 위기였다.

1년 동안 칩거하며 나는 한국역사와 문화 공부에 빠져들었다. 할아버지의 유교적 가정교육과 독특한 역사에 눈뜨며 나는 특별한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됐다. 나는 코메리칸(Korean-American)이었다. 한국인 피에 미국인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삶의 목적을 깨달았다. 이후 기독교 교육으로 학사와 석사를, 이종문화 간의 교육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로스앤젤레스 문화원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미국 내 세계 각국의 외국인과 한국인 2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수강생 6명으로 시작한 한국어 프로그램은 현재 1200명이 넘었다.

안식년을 받은 지난해 전통적인 한국문화를 더 배우고 싶어 한국에 왔다. 노력과 연구를 통해 한국어는 많이 늘었지만 한국문화는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남산을 산책하다가 전통국궁 활터인 석호정을 발견하고 곧바로 회원등록을 했다.

석호정은 일제강점기 동아일보가 민족혼 고취를 위해 매년 전국국궁대회를 개최하던 유서 깊은 활터이지만 탄압에 의해 대회가 중단되었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석호정에서 활을 배우며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외국인이 들러 호기심을 나타내면 회원이 친절히 안내하고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활을 더 배우기 위해 안식년을 1년 연장했다. 내년에 나는 국궁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세계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문화 없이는 못 가르친다는 신념이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 전통 한국 활터를 세우고 궁도를 통해 세계인과 한국인 2세에게 한국문화와 언어를 가르칠 것이다. 나는 한국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코메리칸이다.

송희진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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