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SBS 단독 중계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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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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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후유증에 대비해야 한다.”

SBS에서 월드컵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한국팀의 첫 원정 16강 진출로 광고 매출은 나아졌지만, 64경기 중 56경기를 지상파에서 생중계하는 탓으로 채널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지상파 스포츠 채널’로 불리고 드라마와 예능의 흐름도 끊어졌다. 메인 뉴스도 월드컵 뉴스 비중을 높여 고정 시청자의 혼선을 초래했다.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은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에서 “21일까지 SBS의 월드컵 매출은 600여억 원이며 나이지리아전을 포함하면 650억 원 정도”라며 “16강에 진출하더라도 1000억 원은 안 될 듯하다”고 말했다. SBS는 중계권료 750억 원, 제작비 100억 원 등 1000여억 원을 들였고 16강 진출로 추가 중계권료 60여억 원을 내야 한다. 협찬 등 광고 외 수입을 더해도 손익분기점을 낙관하기 어렵다.

‘스포츠 채널’이라는 별칭도 보이지 않는 손해다. SBS는 월드컵 개막 이후 황금시간대를 축구 중계로 채웠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북한과 일본의 경기는 같은 시간대 1위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대부분의 경기는 10% 안팎에 머물렀다. 오히려 맞편성된 KBS2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제빵왕 김탁구’, MBC ‘동이’는 ‘반사 이익’으로 시청률이 올랐다. SBS 노영환 홍보팀장은 “56경기를 지상파에서 생중계하는 게 힘들지만 단독 중계 논란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드라마 예능의 제작진도 속을 태우고 있다. 다음 주초 일부 정규 편성에 들어가더라도 잇따른 결방으로 인해 시청자를 다시 모으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간판 드라마인 ‘인생은 아름다워’의 김수현 작가도 트위터에 “(결방은) 월드컵에 당하는 테러”라고 말했다. 이 드라마는 단란한 가정에 아들의 동성애 문제를 던져 화제몰이에 성공했으나 네 차례 결방이 찬물을 끼얹었다. 월화 드라마 ‘자이언트’도 비슷한 처지여서 토요일인 19일 오후에 기존 방영분을 요약한 특집을 내보냈다.

게다가 SBS가 월드컵 중계와 관련해 ‘공공장소 전시권’을 엄격히 따지겠다고 하자 “전국민적 관심사에 너무 잇속을 챙긴다”는 시청자들의 반감도 샀다. 월드컵 개막과 동시에 시청자 게시판도 폐쇄했다.

이 같은 중간 결산서는 적신호이지만 SBS는 8강 진출 시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이번에 KBS, MBC를 눌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상파 3사의 공동 중계 협상이 깨진 이유도 SBS는 이번 중계를 후발 채널의 ‘20년 서러움’을 털어내는 전략적 발판으로 여겼고 KBS, MBC는 광고가 몰리는 ‘같은 경기’를 동시 중계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SBS는 겨울올림픽과 월드컵에서 두 차례 독점 중계로 경쟁사에 존재를 각인했다. 겨울올림픽은 초반 스피드스케이팅 부문의 메달과 김연아 효과를 톡톡히 봤고 낮 편성이어서 정규 방송의 차질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단일 채널에는 리스크가 컸음이 드러났고 앞으로 과열 경쟁으로 인한 단독 중계권료의 급등에 대한 비난도 SBS가 감당해야 한다. 승자의 독식이 승자의 저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SBS가 2016년까지 가진 겨울·여름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두고 ‘탈독점’의 방안을 찾아야 할 듯하다. 영국 일본처럼 방송사의 중복 중계 문제가 해결되면 공동 순차 중계가 명분과 실리가 있다. SBS도 KBS, MBC도 ‘독점 중계 논란’을 겪을 만큼 겪었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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