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부동산 정책의 출구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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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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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건설업계는 어김없이 정부의 부양책을 요구한다. 업계 논리는 상황에 따라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대체로 비슷하다. 공사가 끊기면 서민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건설경기를 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민생안정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건설업이 활기를 띠면 미장 도장 목수 같은 전문 직역뿐 아니라 단순 잡역부의 일자리도 늘어난다. 서민 살림살이를 헤아려야 하는 정부로서는 이런 측면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건설경기가 위축됐다는 말이 퍼지면 이런저런 명목의 부양책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 건설업계는 부동산 시장이 빈사 상태라고 아우성이다. 미분양 물량이 업계의 자금줄을 죄고 있는 데다 청약 수요도 실종돼 아파트 분양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중견업체 가운데 4, 5곳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나돈 지 오래다. 기존 주택의 거래도 끊겼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려고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아 발이 묶인 사람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 신규 주택 분양시장과 기존 주택 거래시장이 동시에 늪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특단의 대책’이 나올 법도 한데 외견상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지난달 23일 ‘주택 미분양 해소 및 거래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업계가 기대했던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들은 “툭하면 정부에 기대려는 업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바로잡을 때가 됐다”고 말한다. 인위적인 부양책이 거품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시장 메커니즘이 왜곡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한다. 나무랄 데 없는 문제의식이다.

건설회사들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은 옳다. 무엇보다 집이 얼마나 팔릴지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지 않고 아파트부터 지어댄 잘못이 크다. 아파트 분양 붐이 일어 청약경쟁률이 높아진다 싶으면 가격을 높여 거품을 부풀리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정부도 업계를 탓할 자격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내수 기반 붕괴를 걱정할 지경이 되자 정부는 수도권 주택투기지역을 해제해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한도를 늘려줬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도 폐지했다. 세금을 깎아주고 대출도 쉽게 해줄 테니 집을 사라고 부추긴 셈이다.

잠깐 들썩이는 듯했던 부동산 시장은 작년 9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발표되면서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급한 마음에 처방전을 쏟아냈다가 징후가 심상치 않자 서둘러 강도 높은 규제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띄우려는 유혹을 참았다면, 그래서 인위적인 부양 대신 연착륙을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지역과 평형을 불문하고 모든 주택 거래를 마비시킨 DTI 규제는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경제여건은 또다시 바뀌고 있다. 2010년의 부동산 정책 콘셉트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규제완화로 기울었던 2008년, 핵폭탄급 규제를 택해야 했던 2009년과는 달라야 한다. 금리인상을 뜻하는 출구전략이 하반기에 실행되면 시장 판도에는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꽉 막힌 부동산 시장의 출구를 모색하는 작업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빠르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의 부침(浮沈) 속에서 정부는 언제나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업계를 벌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박원재 경제부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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