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폴란드의 ‘참변 대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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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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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10일 동아일보에는 ‘낙일(落日) 황성(荒城)의 폴란드(波蘭) 수도’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나치에 항전하자고 비장한 선전포고를 한 지 8일 만에 수도 바르샤바가 함락됨으로써 폴란드는 독립 20여 년 만에 또다시 황성의 비운을 맞았다’는 내용이다. 국권을 상실한 폴란드를 통해 조선의 처지를 통탄하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글이다.

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와 고위관리 등 96명을 태운 비행기가 러시아 스몰렌스크 공항에 추락했다. 우리 해군 104명을 태운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한 지 보름 뒤의 일이다. 졸지에 지도자들을 잃은 폴란드 국민과 천안함 참극을 접한 우리 국민의 황망함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폴란드와 한국은 끊임없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일어서는 역사를 써왔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플러스성장을 기록한 세 나라 중에도 폴란드(1.7%)와 한국(0.2%)이 함께 들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폴란드에서 카친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금으로 제작한 거북선을 선물했다. 수교 20주년을 맞은 두 나라가 지난날 잦은 외침에 시달렸음에도 이를 이겨내고 민주화와 번영을 일궈낸 점을 되새기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번 국난에 대처하는 양국의 방식엔 차이가 엿보인다. 폴란드는 초유의 국가적 위기를 맞아 대통령 유해의 매장 장소 논란을 빼고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단결을 과시하며 빠르게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의 스티븐 월트 국제정치학 교수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최근호에서 폴란드를 ‘안정과 안전이 한 개인의 리더십이나 유일 정당의 통제되지 않는 권위에 좌우되지 않는 사회’라고 평가했다. 1989년 총선을 통해 공산당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이룩한 지 21년밖에 안 된 나라로서는 빠른 발전이다.

우리는 어떤가.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는 애초 지켜볼 생각도 않고 천안함 사건의 근본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있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벌이며 “인민군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구호를 외친 대학생들도 있다. 야당 중진이라는 사람은 생존 장병들의 기자회견을 “짜맞추기”라고 폄훼하고, 북한의 공격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낮다. 북한의 민경련이 북한 연관설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근거 아닌 근거를 댔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침몰 당일) 실종자 중 한 사람에게 가족이 오후 9시 16분쯤 전화를 했더니 ‘아버님, 지금 비상이니까 나중에 통화하면 좋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며 군 당국이 발표한 사건 발생 시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기자가 가족 측에 확인해보니 “비상이라거나, 나중에 통화하자거나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했다.

진상을 밝히라면서 실제로는 진실규명을 가로막는 무조건적인 ‘정권 반대세력’들은 만일 북한의 소행임이 드러날 경우 또 어떤 논리로 발을 걸고 나설까. 그들이 대변하며 감싸고 싶은 ‘조국’은 도대체 어디인가.

로마는 기원전 390년 켈트족의 침입으로 신전과 원로원 의사당을 유린당했다. 그러고도 로마가 다시 일어나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해소해 사회안정과 국론통합을 이룬 데 힘입은 바 컸다. 지금 세계는 대한민국의 위기대응 능력을 지켜보고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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