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장에 자극제 되는 막걸리의 도전과 부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2일 03시 00분


업무상 저녁 약속이 잦은 기업 임원 K 씨는 요즘 막걸리를 주로 마신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나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주’에 익숙했지만 막걸리의 맛과 깨끗한 뒤끝을 재발견하고는 막걸리 전도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저녁 모임 때 막걸리를 마시자고 제안하면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허름한 선술집이나 농촌에서만 마신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대도시 고급 음식점에서도 막걸리가 큰 인기를 누린다.

지난해 막걸리의 국내시장 규모는 42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0% 늘었다. 수출액은 630만 달러로 42% 증가했다. 막걸리가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작년 위스키와 와인 수입은 전년보다 각각 25%와 33% 줄었다.

막걸리의 통쾌한 부활은 판매구역 제한규정 철폐 등 주류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업계가 제품의 다양화와 고급화에 집념을 보였기에 가능했다. 정부 규제가 줄어들면서 막걸리 생산업체들은 소비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겨냥한 다양한 제품을 맘껏 개발할 수 있었다. 캔 포장, 살균 등 막걸리의 장기 보관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수출 길도 열렸다. 자금력과 기술, 마케팅 능력을 갖춘 대형 주류업체의 참여도 막걸리의 위상을 높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막걸리를 선정하면서 ‘소비자들이 잊고 지내던 가치를 재발견한 점’을 인기의 비결로 꼽았다.

정부는 ‘막걸리 붐’에 맞춰 국산 쌀 막걸리 허용, 주세(酒稅) 인하, 시설자금 우선 지원, 원산지 표시제 실시, 판로 개척 및 컨설팅 지원 등 막걸리산업 발전을 위한 추가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전통주인 막걸리를 명실상부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명주(名酒)로 키우려면 정부와 해당 업계가 용기 개량, 지역 특화 막걸리 개발 등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 많다. 기존의 중소 막걸리업체와 새로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 사이에 발전적 상생 모델을 마련하고 과당경쟁으로 제살 깎아먹는 일도 없어야 한다.

사양산업이나 재래산업으로 불리는 분야라도 획일적 규제나 보호가 아니라 시장의 자율과 경쟁, 기업인의 창의적 노력이 뒷받침되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막걸리의 성공은 주류산업뿐만 아니라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고 여겨지는 여러 산업의 부활전략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