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강산-개성공단 협상, 원칙 버려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북한은 20일 외자(外資)를 유치해 국책사업에 투자하는 ‘국가개발은행’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주에는 금강산과 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했다. 자력갱생을 외치던 북한이 외자 유치에 나선 것은 큰 변화다. 지난해 3차 서해도발을 했던 북한이 관광사업을 재개하자고 손을 내민 것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의 경제 상황은 절박하다. 노동신문은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쌀밥과 고깃국’을 약속한 김일성의 유훈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는 ‘아픈 고백’을 보도했다. 내부 재원이 없는 북한이 눈을 돌려야 할 대상은 결국 남한과 외국이다.

북한은 ‘국가개발은행’이 1960, 70년대 우리의 산업은행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자를 유치해 성공한 ‘박정희 모델’을 따르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정희 모델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외부의 자금과 기술을 활용한 것인 반면에, 김정일 모델은 북한의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지원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므로 차이가 크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어 외국의 대북(對北) 투자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북한의 기대는 현실화되기 어렵다.

북한은 22일 미국의 헤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표한 ‘2010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서 100점 만점에 1점을 받아 179개 조사 대상국 중 꼴찌였다. 10개 평가 분야 가운데 기업활동 무역 투자 등 8개 분야에서 ‘경제 자유의 부재’를 뜻하는 0점을 받았다. 이런 북한에 어느 국가와 기업이 투자를 하겠는가.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신변보장 대책 마련 등을 북한에 요구해왔다. 이런 원칙이 충족되지 않은 채 정부가 관광 재개에 합의해주면 남한은 다시 북한의 돈줄 노릇만 하게 된다. 북한은 어제 개성공단 3통(통행 통관 통신) 문제 협의를 위한 군사실무회담을 제의했다. 이 회담이 개성공단의 임금 인상을 위한 들러리 접촉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더 많은 현금을 보내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전선에 균열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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