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못 믿을 한국’ 만든 법인세 인하 유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5일 03시 00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가 22일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0%로 낮추기로 한 정부 방침을 2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MB노믹스의 핵심인 부자 감세(減稅)에 제동을 거는 데 성공했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KOTRA 소속 외국인투자 유치기관인 인베스트코리아엔 불똥이 떨어졌다.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한 해외설명회는 물론 홈페이지와 영문저널마다 “법인세가 내년에 20%로 떨어진다”고 홍보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이번 결정으로 재정 파탄과 국가부채 급증을 막고 서민층을 위한 사업에 재정을 더 투입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은 그 반대가 될 공산이 크다. 외자 유치를 위해 싱가포르는 현재 18%인 법인세율을 내년 17%로, 대만은 25%에서 20%로 낮춘다. 경쟁국들은 세금인하 경쟁인데 우리만 인하 방침을 뒤집었으니 경쟁력은커녕 신뢰성도 유지하기 힘들다. 국내 기업들 역시 경영 차질이 불가피하다. 국가신인도가 떨어지고 국내외 투자가 늘지 않으면 경제성장도, 고용확대도 더 힘들어진다.

‘감세는 부자한테만 이로운 것’이라는 좌파의 전형적 포퓰리즘 공세도 허구성을 안고 있다. 신고법인 가운데 법인세를 내지 않는 곳이 44%다. 이미 면세 혜택을 받은 것이므로 정부가 감세를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다. 소득금액 기준으로 상위 10% 법인이 전체 법인세의 96%를 부담한다. 이들 기업이 투자계획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세금이다. 세금 적은 곳이 기업 활동을 위해 손꼽히는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세율이 낮은 곳을 찾아다닌다.

세율 인하를 하면 세금 부담이 줄어든 기업들이 투자를 더 하게 되고, 그 결과로 고용이 늘면 소득 증대로 소비가 촉진돼 세수(稅收)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10월 미국 하버드대 알베르토 알레시나 교수는 1970년부터 2007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감세 정책과 재정확대 정책을 비교분석해 ‘감세 정책이 경제성장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민주당이 법인세 인하에 반대하고 한나라당이 동조하는 바람에 국가신인도가 추락하고 국내외 투자가 위축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국가의 주요 정책이 이렇게 쉽게 무산된다면 외국인뿐 아니라 국민인들 정책 방향을 신뢰할 것인가. 국민은 다른 정책 약속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게 되지 않겠는가. 믿음을 잃는 대가는 크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