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균형발전론’에 날아간 백신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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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0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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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예방주사를 맞지 못한 사람이 많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하자 제약회사들이 독감 백신 대신 신종 플루 백신을 생산한 탓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독감 백신이 모자라 애태웠던 부모들의 항의 글이 많다. 신종 플루 백신도 모자랐고 치료제인 타미플루도 구하기 어려워 공포감을 키웠다.

신종 플루의 기세가 꺾여 다행이지만 우리 정부가 3년 전에 한 일을 되돌아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영국의 세계적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2006년 국내에 독감 백신 공장을 세우려 했다. 백신 공장에는 고급 인력이 필요해 수도권 입지를 원했다.

외국기업 “지방 가면 투자 포기”

당시 백신 공장의 최적지로는 경기도가 꼽혔다. 경기도 관계자가 실무협의를 마치고 경기 화성시 장안면에 용지까지 정했으니 사실상 투자 유치가 확정된 단계였다. 하지만 정부는 전남 화순에 짓도록 요구하면서 화성 공장 건설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지금 싱가포르 공장에서 백신을 생산해 아시아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백신 공장이 국내에 지어졌다면 1억 달러 이상의 투자에다 약 5000만 명이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는 백신을 확보하고 수백 명의 일자리까지 생겼을 것이다. 덤으로 양계산업까지 발전할 기회였다. 신종 플루 백신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일도 없고 오히려 백신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재희 복지부 장관이 욕을 먹지 않아도 되고, 관료들이 플루 백신을 구하러 해외업체에 사정하고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하기야 신종 플루가 올해처럼 대유행할 줄 알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장을 유치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정부가 수도권 대신 전남에 공장을 지으라고 한 것을 보면 백신의 필요성은 알았던 것 같다. 전남에는 그 뒤 국내 기업이 공장을 지어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수도권에 외국 제약회사의 백신 공장을 허가할 수는 없었을까.

더구나 2006년은 기존 외국 업체들마저 잇따라 철수하는 때였다. 2005년 덴마크의 세계적 완구업체인 레고에 이어 한국와이어스 한국릴리 등 다국적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고임금에다 파업 때문에 이미 들어와 있던 기업마저 빠져나가는 마당에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지역균형발전론의 허구성을 확인해주는 사례다.

잘사는 곳 못사는 곳 없이 다같이 잘살자는 균형발전론은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다. 과거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잘 써먹던 메뉴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균형발전론과 싸워서 선거에 이긴 게 아니다.

지방 발전, 지자체에 권한 줘야

이명박 정부는 균형발전론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의 대안도 균형발전론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그러니 행정기관 대신 애꿎은 기업이나 대학만 거론할 뿐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여전히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소중한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라고 주장하고 한나라당은 균형발전론 앞에 손든 형국이다.

세종시의 앞날도 걱정이다. 정부가 주도해 만든 도시치고 성공적으로 발전한 도시는 없다. 지역이 발전하려면 지역 고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산업을 찾아서 유치하고 키워야 한다. 정부와 충청도민이 지역균형발전론의 허상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백신 부족 같은 엉뚱한 부작용과 제2, 제3의 세종시와 혁신도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 중앙정부에 기대지 말고 지방 스스로 살길을 찾도록 지방정부에 권한을 대폭 넘겨줄 때가 됐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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