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KBS 金사장 ‘좋은 게 좋다’로 노조와 野合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5일 03시 00분


김인규 KBS 신임 사장이 어제 오전 노조원들에게 출근을 저지당했다가 오후에야 취임식을 가졌다. KBS 노조는 김 사장이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캠프 출신임을 들어 ‘총파업으로 공영방송을 사수하겠다’고 주장했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위해서라지만 KBS 노조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KBS 노조는 지난 정권이 내려 보낸 사장과 대부분 찰떡궁합을 맞추며 코드 방송을 내보내고 적자를 내면서도 고액 연봉을 챙겼다.

김 사장의 이명박 캠프 경력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 사장 선임 절차는 적법했다. 야당 추천 이사 4명이 포함된 KBS 이사회가 합의를 통해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이 추천한 5명의 후보를 놓고 이사회가 표결을 벌인 과정은 하자가 없었다. KBS 노조가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김 사장 길들이기를 하고, 김 사장이 사장직 보전을 위해 ‘야합’ 하게 되면 KBS 개혁은 이 정부에서도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은 취임사에서 ‘KBS가 확실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최대 과제가 수신료 현실화이며 국민이 수신료를 내고 싶은 KBS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법은 KBS에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공익성을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KBS 사장과 노조는 이런 책무를 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관련 방송은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는 편향보도가 MBC와 막상막하 수준이었다.

김 사장의 중요한 책무는 KBS를 공적 책임을 구현하는 방송으로 바로 세우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 그대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체성을 지키고, 국가의 격을 높일 과제를 안고 있다. 공영방송다운 품격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방송언어를 다듬어 국민 교양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전임 이병순 사장이 사업경비와 인건비 절감으로 1년여 만에 지난해 765억 원의 적자를 흑자로 반전시킨 경영기조를 이어가면서 구조조정과 효율화를 강도 높게 밀고 나가 방만경영을 뿌리 뽑아야 한다.

시청자는 ‘정권의 친위대’ 사장도, ‘노조의 포로’ 사장도 원치 않는다. 오직 나라와 국민을 바라보면서 KBS를 가장 믿을 수 있는 방송으로 철저하게 개혁하는 것만이 KBS가 살 수 있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 사장이 노조와 적당히 타협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임기 채우기에 연연한다면 우리 국민은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 같은 공영방송을 갖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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