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레비스트로스와 소에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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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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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계한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역작 ‘슬픈 열대’는 저자가 1938년 브라질 오지의 원주민 4개 부족을 탐방해 그들의 언어 습속 문화를 기록한 민속지(誌)다. 동시에 서구 중심의 현대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다. 원주민도 보편적 가치에 따라 합리적이고 만족스러운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을 미개인이라고 비웃으며 파괴하는 서구인의 침략성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 우월한 문화는 없다”

대표적 사례가 원주민의 식인(食人) 풍습이다. 카두베오족에 대한 관찰기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카두베오족 여자들은 무사들이 전쟁에서 베어온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장난하는 것을 즐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원주민의 식인 습관은 조상의 몸의 일부나 적의 주검을 먹음으로써 죽은 자의 덕을 얻거나 그 힘을 중화시키고자 하는 주술적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시신을 먹는 ‘내적 구조’를 이해하지 않고 서구인의 시각으로 이들을 야만인, 미개인으로 단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주민은 시신을 먹되 곱게 빻은 뒤 다른 식량과 섞어서 의식을 거행한 후에 섭취한다. 우리에게 이해가 안 되는 사회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와 구조로 다가온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그가 설파한 문화상대주의와 구조주의는 현대 인류학의 기본명제로 자리 잡았다.

인류학 하니까 또 한 사람의 학자가 생각난다. 스탠리 앤 던햄 소에토로란 여성이다. 번듯한 대학의 교수도, 대단한 저술도 없는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다. 캔자스 주 출신인 그는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에 정착해 하와이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그때 하와이대 최초의 흑인학생이었던 버락 오바마(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를 만나 18세에 결혼했다. 아버지 오바마가 하버드대 박사과정 장학금을 받게 돼 하버드대로 가자 아들과 남은 그는 인도네시아 유학생 롤로 소에토로와 재혼해 인도네시아로 떠난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의 모든 장점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건강보험 개혁에 그토록 열정을 쏟는 것도 난소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통합과 화해를 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자질은 그의 어머니가 인류학자였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소에토로는 당시로선 드물었던 지식여성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백인이지만 인류학도로 훈련받은 그에게는 인종적 편견이나 근거 없는 우월감 따위는 없었다.

다양성과 포용력이 경쟁력이다

크게는 세계화의 진전으로, 작게는 국내에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도 원하건 원치 않건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의식은 이런 세상 변화를 받아들일 태세가 덜 돼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외국문화에 대한 우리나라의 개방성이 세계 꼴찌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학생, 결혼이주여성, 새터민(탈북자), 외국인 근로자 등이 늘어나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 것, 우리 문화가 주는 안온함과 익숙함에 안주해온 것 같다.

열대우림이 침엽수림보다 생태적으로 우수한 것은 큰 나무 밑에 관목이, 관목 밑에 초목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 서식하는 생물도 다양한 것이다. 잡종강세는 유전학에서 증명된 법칙이지만 인간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번영했던 이유를 이민족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으며 일단 항복하기만 하면 이민족에 관대했던 문화에서 찾고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로는 세계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들 인류학자의 핵심 메시지다. 때마침 정부가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국회에서 다문화통합기본법을 마련한다니 기대해 볼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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