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찬열]멧돼지 피해, 서식지 관리로 근본예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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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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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는 지난해 140억 원으로 추정된다. 인명 피해도 꾸준히 늘어나 관계당국은 유해동물을 박멸하려고 노력한다. 전체 야생동물 피해 건수 가운데 40%를 멧돼지가 차지한다. 멧돼지를 잡아먹는 야생동물이 없으므로 인간이 마릿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해마다 멧돼지를 유해동물로 지정해 포획하지만 줄지 않는다. 왜 그럴까.

멧돼지가 해마다 일정하게 새끼를 낳는 ‘한배 새끼 수’는 먹이, 보금자리, 인간의 간섭 등 서식지 요인에 따라 늘거나 줄어든다. 지역별로 서식 가능한 멧돼지는 서식지 요인을 분석해 예측할 수 있다. 현재는 도 단위로 정한 멧돼지의 적정밀도 수치를 초과하면 수렵을 허용한다. 멧돼지의 증가 원인을 찾아내 해당 요인을 근원적으로 제어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전남 백운산 활엽수림의 경우 멧돼지가 진흙에 목욕할 수 있거나, 등산로와 멀리 있는 지점일수록 서식확률이 높았다. 멧돼지 포획으로도 마릿수를 줄일 수 있지만 선호하는 서식지를 관리하여 다른 형태로 유도할 경우 근원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숲이 울창해졌으니 멧돼지의 먹이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멧돼지 시각에서는 이용 가능한 먹이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빽빽한 하층식생 탓에 먹이에 접근하기가 힘들거나 인간이 많은 도시 숲에서 먹이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숲 가장자리의 농경지와 주거지에서 먹이를 찾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올해는 태풍 등 자연재해가 적어서 농작물이 풍작이다. 농작물 가격이 하락하니 농민이 수확보다는 방치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따라서 멧돼지는 가을철에 먹이를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농경지와 주거지를 선호한다. 멧돼지의 증가는 산림의 보금자리, 경작지와 주거지의 먹이 터 등 서식지 요인을 수학적 모형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곳에서 나타날 확률이 높을지 예측할 수 있다.

부처 간 협조와 소통도 필요하다. 멧돼지 주관 부서는 환경부이지만 멧돼지가 새끼를 기르는 보금자리인 산림은 산림청 관할이고, 가을철 수확기에 문제가 되는 먹이 터인 경작지는 농촌진흥청 관할이다. 관련 기관의 공동연구와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멧돼지 마릿수를 직접적으로 줄이는 방침에 개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마릿수를 증가시키는 서식지 요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멧돼지 필수 서식지인 보금자리와 진흙 목욕 터를 산림지리정보 시스템을 활용하여 분석하는 식이다.

보금자리는 인간의 접근이 힘들고 하층식생이 무성한 동남사면에 대개 있고, 진흙 목욕 터는 산림에서 지하수위가 들어나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곳에 있다. 현장에서 필수 서식지와 도토리를 비롯한 주 먹이자원의 자료를 확보하고, 전파발신기를 활용하여 멧돼지의 농경지 이동 자료를 분석한다면 멧돼지 마릿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자료는 계절에 따라 멧돼지의 먹이 이용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선정하고 시민에게 예보하는 기초 자료가 된다. 그러면 우리 시민은 좀 더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고 농민은 안심하고 가을걷이를 할 수 있다.

인간이 멧돼지의 서식지인 숲과 경작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멧돼지 밀도는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으며 이 기본적인 지식은 멧돼지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여기저기 나타나는 멧돼지를 잡는 데 그치지 말고 근본적인 원인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박찬열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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