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다바오(打包)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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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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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魚(니,이)·물고기는요)?”

중국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채소는 물론이고 고기 요리를 충분히 시켰는데도 음식점 종업원들은 물고기가 빠졌다며 추가 주문을 재촉하기 일쑤다.

‘이만하면 됐지, 뭘 더 시켜. 너무 매상만 올리려 하네.’ 한국인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중국인은 다르다. 물고기와 육(肉)고기를 구분하는 중국인에게 쇠고기와 돼지고기 요리를 많이 시켰다고 해서 물고기 요리를 빼는 것은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다. 중국인은 육고기와 물고기, 채소, 국물이 있는 탕(湯)까지 모두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여긴다.

청(淸)나라 말기 여걸이었던 서태후(西太后)를 그린 영화를 보면 식사 때마다 100가지 이상의 산해진미가 나온다. 실제로 중국 황제의 정찬은 요리만 120가지였다. 주식(主食)과 점심(點心·후식 또는 간식용 과자), 과일은 별도다.

이렇다 보니 음식 낭비가 심하다. 13억 중국인이 버리는 음식만으로도 10억 안팎의 아프리카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중국도 최근엔 음식문화가 크게 바뀌고 있다. 음식점에 가 보면 남은 음식을 싸 달라고 주문하는 손님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와 달리 종업원에게 ‘다바오(打包·싸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중국인은 거의 없다.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연회에서도 6∼8가지 요리가 나올 뿐이다.

한국은 어떤가. 여전히 푸짐하게 시켜서 음식이 남지 않으면 제대로 접대하거나 접대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시켜 대접하면 되레 접대의 역효과가 생긴다. 이를 의식하다 보니 음식이 남을 줄 알면서도 많이 시킨다. 음식업주들에 따르면 특히 저녁 회식자리의 음식은 절반 이상 버린다고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7년 쓰레기로 버려진 음식만 527만4980t으로 15조 원어치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4%에 이르는 큰 금액이다.

음식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음식점이나 집단급식소가 아니다. 다름 아닌 우리의 가정이다. 전체 음식쓰레기의 64%는 가정에서 나온다. 몽땅 음식을 만들어 상한 듯하면 곧바로 버리는 게 상례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음식낭비 문화가 5000년 전통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다르다. 한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를 면하기 어려웠다. 조선시대 백성의 80%는 하루 세 끼도 먹지 못해 두 끼로 때웠다. 그때는 모두가 아껴 먹었다. 배불리 먹기 시작한 지 겨우 30년이 됐을 뿐이다. 조선실록을 보면 임금님의 수라상도 12첩이 기준이었다. 특히 홍수나 가뭄으로 흉년이 들면 임금도 반찬을 크게 줄여 백성과 고통을 함께했다.

한국보다 1인당 GDP가 2배 이상 많지만 음식 낭비가 거의 없는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주식 외엔 반찬이 없거나, 기본 반찬이 나와도 반찬을 더 달라고 할 때는 돈을 내야 한다. 음식을 절제해 먹으니 평균수명도 길다. 배 터지게 먹는다고 해서 잘사는 게 아니다.

한국음식업중앙회(회장 남상만)는 최근 동아일보와 함께 ‘남은 음식 제로 운동’을 펼치고 나아가 한국의 음식문화를 새롭게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성공의 관건은 가정이다. 음식점 58만4294곳의 동참보다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곳은 1691만6966가정이기 때문이다.

하종대 국제부 차장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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