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훈]두 개의 팡파르, 두 개의 세계화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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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과 베이징에서 울려 퍼진 두 개의 팡파르는 외견상 사뭇 비슷해 보였다. 중국의 건국 기념행사와 서울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소식은 모두 떠오르는 동아시아의 새 활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바깥 세계를 향한 서울과 베이징의 팡파르가 내부적으로 울리는 공명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깊이 음미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의 세계화 드라이브는 적지 않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먼저 베이징의 팡파르. 현대 중국 건국 60년을 맞아 중국정부는 첨단무기에서부터 베이징 하늘의 비구름 제거 기술까지 다양하고 화려하게 솟구치는 힘을 과시했다. 서방의 비평가들은 수십 종의 첨단무기라고 해봐야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는 냉소적인 논평을 내놓았지만 사실 중국의 건국 기념 쇼의 주요 관객은 바깥보다 안으로 더 치중했다. 경제 정치 군사 문화에서 이뤄지는 대국굴기 이벤트가 겨냥했던 것은 무엇보다 중국 인민의 자부심 고양, 역사적 상처 회복, 단합의 강화였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내년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를 알리는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100년 전 일본 제국주의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던 변방의 한국이, 21세기 세계질서의 표준을 짜는 G20의 공동 의장으로서 세계 중심에 다가선다는 개선가가 울린 셈이다. 역사적인 변화이고 대통령과 참모가 G20회의 유치 과정의 무용담을 복기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이 같은 자랑스러운 흥분이 우리 안에서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는가? G20 의장국, 삼성전자, 박지성이 상징하는 글로벌 코리아가 우리 한편에 있지만, 이런 눈부신 흐름을 그저 차분히 지켜볼 뿐인 평범한 시민이 적지 않다. 세계화는 우리 사회 안에 흐르는 미묘한 분리의 강물이다.

中건국 60돌 계기로 내부결속

글로벌 중심 국가로의 도약이 경제위기 극복에 추가된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목표라면 이명박 정부는 이 미묘한 분리의 물길을 터야만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우리의 세계화 드라이브의 공과를 면밀히 돌아보면 ‘소통과 화합에 기반을 둔 세계화’는 선택적 사치가 아니라 절실한 필수 과제임이 드러난다. 민주화 이후 세계화 드라이브를 시도한 김영삼 정부의 노력이 나름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사태로 귀결되고 만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나 홀로 세계화’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1994년 시드니 구상 이후에 김영삼 정부가 적극적으로 세계화를 추진한 것은 물론 자연스럽고도 올바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추진 방식은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서 ‘정책엘리트’가 일방적으로 주도했다. 관료적 합리성에 따라서 속전속결식의 세계화 추진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려는 준비 없는 금융개방이 서둘러 이뤄졌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시 우리 내부에서 세계화 개방의 방향, 원칙, 단계, 속도에 대한 폭넓은 토의와 합의 형성은 대체로 생략됐다. 내부적 통제와 견제가 생략된 개방이 고삐 풀린 형태로 진행됐다. 결국 우리는 단순한 개방, 맹목적 세계화가 외부에서 오는 쓰나미에 지극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서 고통스럽게 경험했다.

G20의 새판 짜기와 1990년대의 금융개방은 전혀 다른 게임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의 새 질서구축은 미국 중국 등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예측 불가능의 역사적 실험이다. 게다가 시대질서의 틀을 짜는 지구촌 변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본 경험, 지식, 영감, 인력이 충분치 않은 우리로서는 더 많은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안고 뛰어드는 셈이다. 결국 우리가 기댈 것은 우리 스스로의 경험뿐이다. 1990년대의 1기 세계화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사실은 ‘정책엘리트만의 나 홀로 세계화’보다는 함께 생각하고 더불어 추진하는 ‘소통과 화합을 통한 세계화’가 대안이라는 점이다.

소통 통해 G20주도 힘 모아야

‘함께하는 세계화’는 내부적으로만 긴요한 것이 아니다. 글로벌 중심국가를 지향한다면 ‘한국형 함께하는 세계화’를 바깥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그동안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사회통합에 기반을 둔 세계화’ 모델은 주로 서유럽에 위치한 옛 선진민주국가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다. 우리를 포함한 신민주국가는 흔히 세계화의 단순 추종자이거나 혹은 거부자로만 알려졌다.

지난 20년간 역동적인 민주화의 모델을 개척한 우리가 위기 이후의 세계에서 ‘신흥국가형 함께하는 세계화’를 내놓을 때 세계는 이명박 정부의 말과 행동을 훨씬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것이다. 줄여 말하자면 세계화의 속도 못지않게 세계화를 향한 우리 안의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 거대한 이웃, 중국이 걷고자 하는 길도 그 방향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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