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식]흉악범 처벌, 문제는 가석방 - 사면 남발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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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초등학생 S 양 성폭행사건, 일명 ‘나영이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7월 중순 범인 조모 씨에 대한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로부터였다. S 양 가족이 개인적으로 들었던 보험사에서 사건 이후 4000만 원의 보험금을 받았는데, 이를 이유로 S 양 가족이 살고 있는 경기 안산시가 지원금을 회수하고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도 제외하겠다고 통보했다는 내용이었다. 재판부는 S 양 가족의 딱한 사정을 돕기 위해 이 사실을 기자에게 알렸고, 이후 안산시는 재심의를 거쳐 S 양 가족에 대한 복지 혜택을 회복시켰다.

그런데 9월 말 모 방송사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형량 논란이 불거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 이어 꼼꼼한 증거 조사를 통해 조 씨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검찰의 항소가 없어 1심과 같이 징역 12년 형을 내렸지만 누리꾼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일부 언론은 수십 년에서 120년까지 긴 징역형을 선고하는 미국 법원의 사례를 들며 한국 법원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단순 비교는 한국과 미국의 사법제도의 차이를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은 유럽의 대륙법 체계에 따라 전문적으로 양성된 법관이 유무죄를 따진다. 형량은 법률과 기존 판례에 따라 ‘배운 대로’ 정한다. 한국의 유기징역 상한선은 단일 범죄의 경우 15년으로 정해져 있다.

반면 영미법 체계는 법조일원화(검사·변호사 경력자가 판사로 임용되는 제도)의 기틀 아래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유무죄를 가린다. 판사는 정해진 양형기준표에 따라 다소 기계적으로 형량을 정한다. 징역형의 상한선도 없다 보니 피해자가 많다거나 전과가 있는 경우 등 다양한 요소가 기본형에 곱해져 수백 년의 형도 나올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한국 법원의 형량보다는 ‘쉽게 풀어주는’ 교정제도에 있다. 실제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 가운데 상당수는 15년 이하의 형을 살면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예가 적지 않다. 여기에 정부의 선심성 특별사면까지 남발되면서 형량을 다 채운 사람은 ‘돈도 배경도 없는 낙오자’로 취급받는다.

반면 미국 연방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가석방위원회가 재량으로 가석방을 허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교도소는 수감자로 포화 상태다. 지난해 미국의 수감자 수는 231만9000명으로 미국 성인 100명당 1명꼴이다. 인구비례로 보면 한국의 8배가 넘는다. 법무부가 조 씨에 대해 가석방 없이 엄격하게 형을 집행하겠다고 한 것은 적절한 조치다. 하지만 반짝 여론에 편승한 임시방편보다는 이번 기회에 흉악범죄자들의 가석방과 사면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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