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긴급시론<3>/안세영]‘FTA 허브국가’ 날개 달았다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중국이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거대 중화경제권의 탄생. 태평양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미국 워싱턴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다. 중국이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쥐면 장기적으로 폐쇄적 경제 블록이 생길 우려가 크고, 이 지역의 군사적 균형이 깨져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본다.

협상타결 뒤엔 美의 中견제 심리

몇 년간 미국의 우려가 하나 둘 현실로 나타났다. 2005년 말레이시아에서 아시아 16개국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출범시켰는데 인도까지 포함된 회의에 미국이 빠졌다. 동남아에 사는 3000만 명의 화교는 이 지역 경제의 3분의 2를 장악했다. 중국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2010년까지 자유무역협정(FTA)을 완결 지으면 황금시장이 베이징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셈이다. 미국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요인은 한국경제의 행보다. 한국의 제1 교역대상국이 2004년에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더니 무역과 투자 면에서 빠른 속도로 중국 쪽으로 달려갔다.

이 같은 배경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하노이 비전’을 발표했다. 환태평양 국가가 모두 참여하는 APEC-wide FTA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첫걸음으로 동아시아 경제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미국은 한국과의 FTA를 성사시켰다.

미국은 FTA를 세계 외교안보 전략의 큰 틀 속에서 활용한다. 중동의 친미국가인 이스라엘, 요르단과 맺은 것이 대표적인 안보형 FTA다. 한국과의 FTA는 미국으로선 혼합형이다. 세계 11위의 시장에서 경제적 이득을 보고, 북한 핵과 중국의 부상으로 날로 복잡해지는 동아시아의 지각 변동 속에서 한미 동맹을 단순한 군사동맹이 아니라 포괄적 군사경제동맹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해는 초강대국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위기의식을 느끼는 한국의 이해와 맞아떨어졌고 두 나라는 FTA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며칠간 일본, 중국, 유럽연합(EU)의 반응을 보면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일본 관방장관은 “언제든지 중단된 한일 FTA 협상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나왔다. 중국은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라는 반응이다. 서울과의 FTA를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까지 끌어들여 중화경제권을 만들겠다는 베이징의 꿈(!)이 깨질 판이다. 다음 달부터 한국과 정부 간 협상을 시작하는 EU는 올해 안에 마무리 짓자고 벼른다.

이들 국가가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우리로선 ‘꽃놀이패’다. 협상 초반부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놀랄 국제적 반응이며 성과다. ‘FTA 지각 국가’라는 손가락질을 받던 천덕꾸러기 한국이 하루아침에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주도자 역할을 하게 됐다.

EU 中日과도 유리한 협상 가능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큰 강대국과의 게임이라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다. 한미 FTA라는 큰 고개를 넘은 이상 앞으로의 FTA는 빠르게 물살을 탈 것이다. 기존에 진행 중인 캐나다, 인도와는 물론이고 EU, 중국과의 협상도 일사천리일 것 같다.

미국과 손을 잡음으로써 북핵 문제는 물론이고 대중, 대일 외교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훨씬 높아졌고, 경제의 안정성과 투자 매력이 대폭 개선됐다. 베트남의 공산화에서 보듯이 미국이 신뢰를 상실한 군사동맹을 내팽개친 일은 있다. 그러나 경제전쟁시대 미국 기업의 이익이 달린 경제동맹과 등을 돌린 예는 하나도 없다. 한국은 한미 포괄동맹관계를 바탕으로 좀 더 안정된 경제와 안보 환경을 디딤돌로 하는 FTA 허브국가로 부상할 날개를 단 셈이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통상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