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희망의 왕’… ‘박치기 왕 김일’을 떠나보내며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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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김일이라는 이름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가 획득한 챔피언 타이틀이 아무리 많고 전적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김일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아로새겨진 꿈과 희망의 상징이 한꺼번에 되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일은 단순하게 김일이 아닌 것이다. 이름 앞에 반드시 ‘박치기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비로소 온전한 꿈의 대명사 ‘박치기왕 김일’이 되는 것이다.

내가 다섯 살 때부터 박치기왕 김일은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대중적 영웅이 없던 시대에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링에서 그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손에 땀을 쥐고 언제 박치기가 터질 것인가, 가슴을 졸이며 조바심을 치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텔레비전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좁은 만화방이나 부잣집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보며 나는 박치기왕 김일의 일거일동으로 온 나라가 환호하고 신음하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가 위기에 몰리거나 이마에 피를 흘리면 좁은 공간에 모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탄식을 터뜨리거나, 한숨을 내쉬거나, 울분을 토하곤 했다.

하지만 박치기왕은 언제나 우리를 절망에서 구원해 주었고, 우리는 그의 구원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단 세 번의 박치기로 온 국민을 희망과 환희의 영역으로 이끌어 올렸던 진정한 왕!

그는 내가 살아온 시대의 진정한 왕이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왕, 국민의 염원을 배신하지 않는 왕,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왕, 피 흘릴지라도 끝까지 싸워 이기는 왕…. 그는 내가 읽어온 동화 속의 어떤 왕보다 위대하고 값진 승리를 국민에게 안기는 왕이었다.

그 시절, 그가 진정한 왕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레슬링의 시대가 가고 왕의 시대가 갔다. 링을 떠난 왕은 경기 후유증과 지병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가끔 그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저렸다. 파렴치한 반칙왕들은 권좌를 떠나서도 떵떵거리며 사는데 어째서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던 진정한 왕은 저렇게 쓸쓸하고 불행한 말년을 보내야 하는가.

박치기왕 김일을 떠나보내며 진정한 왕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진정한 왕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권력으로도 금력으로도 그것은 쉽사리 성취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치기왕 김일이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영원한 꿈과 희망의 메시지처럼 이런 때일수록 진정한 왕에 대한 기다림을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반드시, 언젠가, 그리고 어디에선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선사할 또 다른 왕이 오기를 우리는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참다운 왕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박상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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