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그레고 쿰/"독일식탁과 한국밥상 함께"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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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대부분에게 한국 음식은 생소하다. 개고기를 먹기도 하고 젓가락을 쓴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솔직히 필자도 1997년 한국에 처음 발을 딛기 전까지는 이런 수준이었다. 지금은 한국 음식의 열렬한 애호가가 됐지만….

한국과 독일 음식 문화의 차이 중 내게는 특히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첫째, 독일에서는 정해진 코스에 따라 요리가 나온다. 수프나 약간의 애피타이저 뒤에 고기나 생선으로 된 주요리가 나온다. 주 요리에는 각종 야채와 감자, 면 또는 밥이 곁들여지고 식사는 디저트로 마무리된다. 한국의 경우 각종 요리와 반찬이 동시에 한 상에 올려져 모든 요리를 맛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는 동시에 올라오는 음식의 종류가 더욱 많아진다.

음식이 한 상에 차려지기 때문에 음식 준비 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도 독일과는 다르다. 나는 한국인 아내를 두었기 때문에 처가에서 전통식으로 차려진 식사를 여러 번 접해봤다. 장모님과 처제, 처가의 며느리 등 모든 여자들은 명절 하루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명절날 남자들이 식사를 시작해도 여자들은 여전히 부엌에서 분주하다. 여자들이 일할 때 남자들은 모두 가만히 앉아 있고, 남자들의 식사가 끝날 무렵에야 여자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한다는 사실도 처음에는 너무 놀라웠다.

독일에서는 각 코스 사이에 여성이 요리를 가지고 오거나 마지막으로 손을 보는 과정을 거치지만 이때에도 식사하는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돕는다. 아마도 이런 차이는 한국과 독일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한국 여성들이 음식 준비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면서 동시에 식탁의 풍성함이 유지되길 바란다. 또 한국 남성들도 음식을 준비하는 여자들을 조금이라도 돕는 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한국인은 음식을 한 그릇에서 함께 먹는 반면, 독일인은 개인별 그릇을 선호한다. 개인주의와 전체지향적인 문화 차이가 음식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가정은 물론, 음식점에서도 각자 자기 메뉴를 따로 주문한다. 옆 사람과 음식을 공유한다고 해도 요리 일부를 덜어 다른 사람 접시에 올려주는 정도가 전부다. 반면 한국에서는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음식을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음식문화 때문에 한번에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일이 가능한 듯하다.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식생활의 변화가 계속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양국의 음식문화는 이토록 차이가 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국적인 음식에 대한 감탄으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앞으로도 개고기나 번데기는 먹지 않을 생각이지만 지금 나는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주는 한국-독일식 퓨전 요리의 맛을 한국식과 독일식 식사법으로 즐기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약력 ▼

1966년 독일에서 태어나 괴팅겐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5년 경영전략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 뒤셀도르프 사무소에 입사해 글로벌 하이테크, 정보통신 분야 등의 컨설턴트로 일해 왔다. 97년부터 99년까지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한 뒤 올 1월 다시 서울사무소로 부임했다.

그레고리 쿰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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