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기획시론<3>]이인호/ '고민의 습성' 회복하자

  • 입력 2002년 8월 13일 19시 18분


광복 57주년, 대한민국 수립 54주년이 내일로 다가왔다. 이 뜻 깊은 날을 환희와 감사의 축제로 기리는 대신 진부한 기념식을 핑계로 하루 놀 수 있는 덤덤한 휴일로 여기는 것이 역사와는 담을 쌓고 싶어하는 듯한 우리의 현실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 날이 있게 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반성해 보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져보자.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무엇을 향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망국의 통한을 풀지 못하고 감옥에서, 이국 땅에서, 또는 이 나라의 그늘진 구석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진 애국지사들, 먼 미래를 바라보며 후세들을 깨우치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이름이라도 팔아야 하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던 우국지사들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느끼며 무엇이라 생각할 것인가.

▼물질만능-이기주의 팽배

‘대∼한민국’을 한 목청으로 외쳐대던 6월의 우리 모습을 보았다면 그분들은 분명 감격에 목이 메었을 것이다. 드디어 우리의 후손이 해냈구나. 우리가 자랑스러웠고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에 큰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달도 못 가서 우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 다른 모습들은 어떤가. 어느 대통령후보 아들의 해묵은 병적기록표를 놓고 여야가 연일 으르렁대며 매체들도 그것이 마치 천지가 진동이나 할 만한 주제인 듯 대서특필하고 있는 가운데 충분히 예측될 수 있었던 홍수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외쳐대며 환호하던 일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돈 있는 사람들은 ‘교육’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빼돌리기에 급급한데 우리 학교에는 아직도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있다.

하물며 중국 옌볜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 동포들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 배려 부족에 관해 말해서 무엇하랴. 더더구나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동족이나 통일에 관한 문제야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집중해 해결하려 해도 하늘이 돕지 않는 한 받아들일 만한 해결책이 잘 나올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선열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내 놓을 수 있는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꿈같은 일이 이루어졌던 것은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이며 그러한 발전의 동력은 바로 우리 민족 특유의 부지런함과 총명함이었다. 8·15 광복 후, 그리고 6·25전쟁 후 폐허에 올라앉았던 우리는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드디어 민주국가로서의 기본틀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을 괴롭혔던 약소민족으로서의 열등의식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일본도 미국도 중국도 이제 우리를 업신여길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가장 흡족한 마음으로 조상들 앞에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이 가볍지 않고 우국선열들 앞에 완전히 떳떳하게 설 수 없음은 무슨 까닭일까.

민족분단의 아픔을 딛고 서서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아니 어쩌면 애써 잊어버린 까닭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 반추의 습성과 능력이다. 망국의 슬픔을 딛고 살 때 도덕적 고민은 배웠다는 사람들의 소명이었다. 고민하지 않는 지식인이란 상상 밖의 존재였다. 그러나 경제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과정에서 고민은 어느새 냉소나 독선으로 대치되었다. 이것은 ‘진보적’ 지식인의 경우나 ‘보수적’ 지식인의 경우나 다 마찬가지였다. 소신에 기초하지 않은 이념적 충성을 강요당하고 마치 형제간에, 부부간에 총부리를 겨누며 사는 듯한 분단의 도덕적 비극이 이러한 도덕적 도피주의의 근원이 되었다고 변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변명이 사태를 해결하지는 못 한다.

▼도덕적 자기반성 되살릴때

중국에서 온 어느 동포가 대한민국 사람들은 희로애락 중에서 ‘희로’는 알지만 ‘애락’은 모르는 듯하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자신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슬퍼할 줄 아는 감수성을 회복하고 사회나 정치문제의 해결을 위해 도덕적으로 고민하며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새로 얻은 자신감이란 약육강식의 땔감이 될 뿐 민족의 결속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국경의 의미가 희석된 세계화시대, 인터넷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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