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기획 시론<2>]조순/경제의 기본 다시 세우자

  • 입력 2002년 8월 12일 18시 11분


한국은 이제 만 57세가 됐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지도 54년이 됐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난 지도 한참 됐으니, 지난날의 자취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가늠해 보자.

한국 경제를 평하는 사람들 중에는 단기적으로 어렵다고 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낙관한다는 단서를 다는 이가 많다. 나는 반대로 본다. 단기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은 국내적으로는 휴전, 국제적으로는 냉전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휴전과 냉전의 질서는 본질적으로 알기 쉬운, 흑백과 선악이 분명한 단선적 질서였다. 정치에 있어서는 반공만 하면 됐다.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미국만 따르면 됐다. 경제에 있어서는 수출만 하면 됐다. 이 알기 쉬운 기준에 따르면서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큰 발전을 이룩했다.

▼구조조정 미적…경쟁력 흔들▼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냉전이 끝나면서 우리 경제에는 그동안 잠복되어 있던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제경제는 글로벌화(globalization)라는 새로운 질서가 소리없이 새 판을 짜고 있었다. 우리는 그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세계화’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무모한 돌진을 하다가 결국 넘어져 외환 사태를 맞고 말았다.

외환 사태 이후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구조조정을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원하는 대로 단숨에 국제경제에 편입되었다. 미국의 평가기관들은 이 IMF 우등생에 대해 많은 찬사를 보내면서 국가신용등급을 올렸다. 그러나 수출이 어렵고, 무역외 수지의 적자가 부풀어 오르고, 투자는 안 되며, 재정적자가 쌓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와 건설에 의존하는 경기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구조조정은 겨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끈 미완성의 상태에 있는데, 국제 경쟁력은 아직 활발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4800만 국민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아직 확실한 비전이 없다.

먼 장래를 내다볼 때 도저히 낙관할 수 없다. 나라의 기본이 서 있지 않은 것이다. 나라의 기본에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람이다. 사람을 잘 가르치고 잘 써야 한다. 둘째는 나라의 기본 틀, 즉 골격과 구조, 제도와 관행들이다. 이런 것들이 잘 돼 있어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르게 된다.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우리나라가 인물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대학에서는 좀 더 수준 높은 지성인과 과학자들이 길러져야 한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자. 대외정책의 기본은 동아시아의 평화 정착에 두어져야 한다. 아직도 휴전 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지금도 흡사 아시아의 발칸반도처럼 전운이 감돌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가 다시는 아시아의 싸움터가 되지 않도록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평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대외 경제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중일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세 나라 모두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고 동아시아의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대일(對日) 무역적자와 대중(對中) 무역흑자가 늘 것이다. 중국에는 대한(對韓) 무역적자와 대일 무역흑자가 증가할 것이다. 일본에는 대한 무역흑자와 대중 무역적자가 늘 것이다.

▼한-중-일 FTA 체결을▼

그러나 일본은 중국이 포함되는 FTA는 원치 않는 것 같다. 경제상의 실익도 적고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중국은 버거운 상대로 느끼는 것 같다. 반면 중국을 배제한 한일만의 FTA는 해도 좋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으로는 한일만의 FTA는 자충수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당장 대일 무역적자를 심화시킬 뿐 큰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일 라이벌의 중간에서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우리에게 현명한 선택이 못 된다.

사실 우리로서는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한일 FTA보다는 한중 FTA가 더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 우리 대부분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생산기지와 판매기지를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한중 FTA가 성립된다면 그것은 중국에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엄청나게 높일 것이다. 일본이 3국간의 FTA를 꺼린다면 우리는 최소한 한중 FTA, 한일 FTA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바둑에서와 같이 경제외교에도 원칙과 수순이 중요하다.

조 순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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