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생산복지로 가는 길'노벨경제학상 멀리스교수 조언

  • 입력 2001년 9월 7일 19시 10분


제임스A 멀리스교수(왼쪽) 정경배 보건사회硏원장
제임스A 멀리스교수(왼쪽) 정경배 보건사회硏원장
9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A 멀리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65)가 내한해 6, 7일 서울에서 열린 ‘생산적 복지’ 국제 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정경배(鄭敬培)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은 7일 멀리스 교수의 숙소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그를 만나 한국과 영국의 복지정책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눴다. 멀리스 교수는 특히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 파탄 문제를 언급하면서 “보험료 인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정 원장은 대담이 끝난 뒤 “복잡한 문제에 대해 명쾌한 논리로 이야기를 전개했다”고 평가했다.

▽정 원장〓토니 블레어 정부의 경제 및 복지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마거릿 대처 정부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멀리스 교수〓블레어 정부에서는 아동과 가정에 대한 복지 혜택이 늘고 있다. 또 저소득층의 직업 창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대처 정부는 복지 지출을 다소 억제하는 쪽이었다. 대처 정부 때 노조의 파워를 꺾으면서 경제 안정을 찾았고 블레어 정부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혜택을 누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의료 분야에는 문제가 있다. 국가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자 정부는 돈을 덜 들이면서 서비스 질은 높이려 한다. 그 결과 국민의 불평이 나온다. 장시간 대기하고 ‘5분 진료’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정〓교육 부문은 어떤가.

▽멀리스〓블레어 총리는 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이라며 교육을 강조했지만 교사가 부족하다. 봉급이 낮기 때문에 이직하는 교사가 많은 반면 새로 교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적다.

▽정〓블레어 정부의 철학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란 무엇인가.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발전적 결합으로 봐야 하나.

▽멀리스〓그 중간에 있는 것은 맞다. 영국은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고 있다. 런던 지하철도 민영화해서 운영한다. 연금도 공공과 민간의 혼합 방식이다. 중앙정부가 했던 기능의 상당 부분을 지방 정부에 이관하며 자율성을 높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역할이 큰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르다. 제3의 길이 사회의 모든 부문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유럽 국가들의 ‘과잉 복지’가 경제성장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은데….

▽멀리스〓예컨대 네덜란드는 장애 급여가 평균 임금보다 높다. 실업 급여도 너무 많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복지 지출을 줄이는 것은 온당치 않고 그렇게 할 뜻도 없다. 단, 공평성을 유지하면서 인센티브를 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가지 개혁 정책을 펴고 있어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기업에 과도한 사전(事前) 세금을 물리기보다는 이윤이 남으면 그 이윤에 사회복지 기여금을 부담시킨다. 그렇게 하면 상품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세계화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보자. 세계화가 교역을 증대시키고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하고 고용을 증대시키지만 경쟁에서 패배한 나라는 실업이 증가하고 빈부 격차를 초래하지 않는가.

▽멀리스〓세계화는 자본 이동을 촉진시키는 등 장점이 있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폐쇄되고 그 결과 실업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복지 예산을 늘리고 저소득자 보조금을 늘려 불평등을 해소한다.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춰야 이런 문제를 흡수할 수 있다.

▽정〓국민연금에 대해 얘기해보자. 적립 방식과 부과 방식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적립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년이 안돼 적립금이 100조원 가까이 쌓여 투자할 곳이 없다. 두 방식 중 어느 방식이 바람직한가.

▽멀리스〓기금을 다양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히 외국 자산을 구입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해외투자도 해야 한다. 노령화 추세로 볼 때 적립 방식(본인이 보험료를 내고 기금을 적립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부과 방식(매년 국가 예산에서 지출하는 방식)은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정〓한국과 영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 좀더 얘기하면….

▽멀리스〓영국은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의보 지출 비율이 약 5%(500억 파운드) 정도 된다. 유럽 국가들은 7∼8% 정도 된다. 한국은 현재보다 국민의 보험료 부담 수준을 늘려야 한다. 의료서비스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값비싼 것을 왜 싸게 하려고 하느냐. 보험료를 내는 것과 혜택을 받는 것은 비례해야 한다.

▽정〓형평성과 효율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적정 조세는 어느 정도인가.

▽멀리스〓복잡한 문제이다. 형평성을 유지하면서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고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적정한 사회복지 예산 규모는 GDP의 25% 정도이다.

▽정〓마지막으로 한국의 복지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멀리스〓장애인에 대한 사회보장 급여가 너무 빈약한 것 같다. 사회보장 지출이 아직 보수적이다. 의보 재정 적자 문제는 보험료 인상으로 즉각 해소해야 한다. 차입금에 의존하는 것은 경제에 매우 해롭다. 미루면 안된다.

▼멀리스는 누구?▼

제임스 A 멀리스 교수는 수리경제학자로서 ‘최적 조세이론’을 집대성한 경제이론 분야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최적 조세이론이란 소득 재분배를 통해 공평성을 추구하되 공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인센티브 결여로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므로 어떻게 하면 공평성과 효율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조세 체계를 만들 수 있느냐를 연구하는 것이다.

멀리스 교수는 ‘비대칭적 정보 하에서의 인센티브에 관한 경제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공로로 9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이 이론을 통해 불확실한 정보 때문에 개별 국민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세금을 어느 정도 물려야 가난한 사람이 분발하고 부자도 비교적 불만이 없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느냐를 연구 분석했다.

1936년생인 그는 33세인 1969년 영국 옥스퍼드대 정교수가 됐다. 21세에 에든버러대에서 수학 석사학위, 27세에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5년 이후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멀리스 교수는 훌륭한 수학자이면서도 경제적 의미 없이 수학 자체에 매달리는 것은 싫어했다고 밝혔다. 그의 제자인 한양대 나성린 교수(경제학)는 “그는 ‘직관이 우선이고 수학은 단지 그 직관을 증명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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