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인물]청와대에 국정 비판 상소 석종근씨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8시 45분


11일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상소문 형식으로 올린 ‘신 단성소(新 丹城疏)’라는 글을 통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강하게 비판했던 석종근(石宗根·39)씨.

진해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계장인 그를 만나러 19일 경남 진해로 내려가면서 기자는 그가 ‘남산 딸깍발이’식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격려-비난 전화 절반씩▼

그러나 그와의 만남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약속을 했는데도 그가 ‘출장’을 간다며 자리를 비워버렸기 때문. 이곳저곳 연락한 끝에 그를 만난 것은 약속보다 다섯시간가량 늦게 였다.

조직에 누(累)가 될까 자리를 피했다는 그는 하지만 기자를 만나자마자 조선시절 상소문 ‘단성소’를 명종에게 올려 내외척과 탐관오리들의 국정 농간을 통렬하게 꾸짖었던 남명 조식(南冥 曺植)선생 얘기부터 꺼냈다. 이어 예(禮)와 제례(祭禮)문제 등 유학과 한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런 그의 모습에 남산 딸깍발이의 풍모가 흠씬 배어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그는 비로소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명으로 상소문을 올린 이유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상소문 형식을 빌러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을 뿐이지요. 공명심만으로 어떻게 현직 공무원이 대통령에게 극언에 가까운 발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상소문을 올린 이후 걸려온 전화 중 격려와 비난이 절반정도씩 됐다”며 “국론을 모아 난국을 극복하자는 뜻에서 올린 글이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가 올린 상소문 곳곳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이 담겨 있지만 일부에서 오해할 정도로 너무 과격한 것도 사실.

“국정이 그릇된 지 오랩니다. 나라의 기틀은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났으며 민심은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져 각하에게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정부투자기관은 이면합의로 제 밥통만 챙기고, 고위당직자와 각료들은 거들먹거리며 엽관(獵官)을 행하고, 모두들 눈먼 공적자금만 낭비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고 보면 각하는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밖의 소식에 어두운 구중궁궐에 있는 외로운 한 늙은이에 불과합니다….”

그에게 이 정도의 글을 두려움 없이 올릴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물었다.

“일부에서는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저는 공무원이 국가의 녹을 먹었으니까 더욱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무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게 아닐까요.”

거침없는 그의 얘기는 ‘민주도정 실현 경남도민모임’의 대표로 창원과 진해를 연결하는 국도에 건설된 안민터널의 통행료 징수의 부당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대목에 이르러 더욱 커졌다.

▼시만단체 조직 道상대 소송▼

현직 공무원으로서는 드물게 시민단체를 스스로 만들어 대표직을 맡고 있는 그는 공무원으로서 경남도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 줄을 알면서도 불법적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1년 이상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나 보고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잘못된 일을 고치는 일은 누군가 해야 하고 그 일이 제 의무라면 주변의 비아냥쯤은 참고 넘길 수 있는 일 아니겠어요.”

<진해〓김동철기자>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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