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긴급제언]사공일/실질적 '경제사령탑' 있어야

  • 입력 2000년 11월 7일 19시 44분


《“국내 증시 주식 시가 총액의 30% 이상을 외국인들이 갖고 있다.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증시와 경제를 좌우하는 큰 세력이 됐다. 외국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경제정책과 기업 행태로는 경제와 금융의 세계화 시대에 생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안에서보다 밖에서 우리를 더 잘 안다. 기업이나 금융을 구조조정해 ‘밖’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가 97년과 같은 제2의 환란에 빠져들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환란을 맞았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훌륭히 위기를 극복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투자해서 이윤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경제를 책임지는 정부와 사람들이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알고 있으며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의지만 보여주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계속 갖게 될 것이다.”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장관 등을 지낸 사공일(司空壹)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현재 우리 경제가 맞고 있는 난국을 헤쳐 나가는데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또 재무제표 등 통계도 믿을 만해야 한다. 기업의 발표를 믿지 못하고 루머가 횡행해서는 투자나 합작 논의도 할 수 없다. 사외이사 제도 등이 필요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또 대내외적으로 한국 경제를 대변할 ‘명실상부한 경제 총수’가 있어야 한다.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경제 총수는 대변인(spokesman)역할을 맡아 중장기적 비전과 장단기 개혁 과제 등을 설명하고 그대로 실천해 신뢰를 받아야 한다. 말만 그럴듯해서는 안 된다. 그가 ‘능력있고 문제를 잘 파악해 대처하고 있다’는 인식만 심어 주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는 계속될 것이다. 그는 미국 월스트리트에 자주 가서 한국경제 신인도를 높이는 활동을 벌여야 한다.”

―내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해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은데….

“다원 사회에서 중지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므로 토론이 활성화돼야 한다. 중요 현안을 다루는 TV 방송의 프로그램이 심야시간대가 아닌 황금시간대에 해야 한다. 각 분야 대표가 참여해 토론을 통해 현안의 절박함이나 고통 감내의 필요성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개혁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개혁에는 이미 저질러진 것을 해결하는 과거 지향적인 것과 바람직한 경제틀을 만들어 나가는 미래 지향적인 방향이 있을 수 있다. 현재는 전자에 너무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현재는 불가피하게 정부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부실기업 처리에 관한 화의 법정관리 워크아웃 등을 통한 기업 처리가 시장 자동조절 기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외국 투자자들의 바람이다.“

―고유가, 미국 경제 연착륙 여부 등 대외 변수에 국내 경제가 너무 취약한 편인데….

“개방화 세계화시대에 한국과 같은 소규모 경제국가로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내년 미국 경제도 성장률도 2∼3%로 둔화되고 고유가도 국제수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체 체질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며 남북통일을 위한 체력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과거 한국 경제를 이끌어 왔던 재벌들이 무너지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경제 개발 초기에 재벌은 정부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일부 분야에 투자토록 하는 산업정책을 통해 재벌은 커 온 것이다. 이런 정책은 경제 성장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국내외 여건이 달라졌다. 경제에 국경이 없어지고 무한 경쟁시대가 왔다. 아무리 유능한 총수라도 40∼50개 기업을 세계적인 1위 기업으로 끌고 갈 수는 없다. 재벌 개혁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길게 봐서 한국 경제의 앞날을 낙관하는가.

“지식기반사회에서 우리 경제에 장점이 많다. 교육이 가장 중요한데 교육에 관한 한 한국은 초과 수요 상태다. 인터넷 인구 확산, 초고속통신망 확대 등을 보면 정보화시대에 한국의 창의성이 발휘될 가능성이 높다. 부존자원 부족 등 산업화시대의 부정적인 요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 경제의 나아갈 바를 정리한다면….

“금융 세계화는 ‘수지 맞는 곳으로 돈이 간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업 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만 만들면 희망이 있다. 정부의 역할은 거시 경제적 안정과 미시적인 규제 완화, 제도의 투명성 확보 등이다. 제도나 기업 경영이 투명해지면 외국 투자자가 몰려오고 일자리가 생긴다. 다만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거론되고 있는 소득 분배 왜곡을 막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정리〓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사공일 약력▼

△서울대 상대 졸업

△미국 UCLA대 경제학 석박사, 뉴욕대 교수

△1973∼198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금융실장 부원장

△1983년 산업연구원(KIET) 원장

△1983∼1987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1987∼1988년 재무부장관

△1989년 이후 IMF특별고문

△1993년 이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2000년 9월 이후 대외경제통상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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