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신당동 마복림 할머니의 47년 떡볶이 인생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9시 16분


오늘이 있기까지 마할머니의 반세기에 가까운 ‘떡볶이 인생’은 몇날 밤을 새며 얘기하고도 남을 만큼의 애틋한 사연으로 점철됐다.

전남 광주의 한 중농 집안에서 2남3녀 중 넷째딸로 태어난 마할머니는 어릴 적 남부럽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큰오빠가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뜨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장남을 잃은 슬픔에 못견딘 아버지마저 2년 뒤 화병으로 숨진 데다 재산도 남의 손에 넘어가 남은 가족들은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해졌다.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어머니가 열아홉에 목포로 시집을 보냈지.” 공사일을 하던 남편을 따라 전국 곳곳을 떠돌다 광복 이후 서울 동대문시장에 터를 잡은 할머니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물건을 팔며 그런 대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은 항상 꼬리를 무는 법일까. 얼마 뒤 6·25전쟁이 터지고 3년간의 피란살이를 마친 뒤 찾아온 집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당장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들었어. 생각 끝에 양철냄비에 고추장을 풀어 떡을 볶아 팔기 시작했지.” 오늘날 신당동 떡볶이의 ‘기원’인 셈이다.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손맛’이 알려지면서 장사는 나날이 번창했다. 5형제가 배를 곯지 않은 것만으로도 할머니는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얼마 뒤 7대 독자로 유달리 몸이 약했던 남편마저 세상을 뜨면서 할머니는 홀로 5형제를 키워야 했다. “그 고생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 자식들이 모두 착해 큰 힘이 됐어.” 이후 자식들이 결혼하면서 차례로 들어온 며느리들이 ‘가업’을 물려받아 두 곳의 가게운영을 맡아 할머니는 이제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10년이 넘는 단골고객도 수두룩해.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찾아줘 고마울 따름이지.” 게다가 얼마 전 탤런트 유인촌과 함께 찍은 TV CF가 히트하면서 마할머니는 손님들로부터 ‘사인공세’를 받는 등 톡톡히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요즘도 오전 2시면 가게로 ‘출근’해 자신만의 비법이 담긴 떡볶이장을 만들고 인근 시장에 장을 보러간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끌기 위해 라면, 쫄면, 각종 야채를 넣은 신당동 떡볶이의 ‘원형’을 개발한 것도 할머니의 이같은 왕성한 노력 덕분이었다.

할머니는 “10년 전만 해도 이 일대 50여개의 가게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떡볶이를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댔다”며 “인스턴트 식품에 밀려 ‘떡볶이 사랑’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21일부터 거리축제▼

제1회 신당동 떡볶이 거리축제가 21일 오후 1시부터 9시30분까지 서울 중부소방서 뒤편에서 펼쳐진다. 폭 12m 도로 양쪽이 축제의 무대가 된다.

풍물패가 분위기를 돋운 뒤 현장에 나온 외국인들이 직접 떡볶이를 만들어 맛보는 ‘현장체험 떡볶이 만들기’ 행사가 축제의 첫 운을 뗀다. 거리 곳곳에는 페이스페인팅과 함께 매직풍선을 만들어주는 퍼포먼스가 마련된다.

이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는 21개 떡볶이 업소들이 함께하는 ‘떡볶이가족 노래자랑’, 즉석에서 춤솜씨를 뽐낼 수 있는 ‘DDR 경연대회’ 등도 진행될 예정. 특히 신당동을 찾는 주고객층이 중고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인 점을 감안, 이들이 마음껏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청소년 댄스 페스티벌’도 뒤이어 펼쳐진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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