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컬럼]조규곤/'디지털 저작권' 새 패러다임 수용을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36분


필자는 대학시절 다른 사람의 노트를 빌려 복사했던 일이 적지 않았다. 복사기술의 편리함에 흐뭇해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사람이 힘들고 어렵게 작성한 강의노트를 아무 노력없이 쉽게 복사한다는 데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이야기다.

아날로그 시대의 저작권은 처음부터 한정적인 복사권한과 무제한의 사용권한을 가정하고 있었다. 즉 하나의 복사된 저작물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하나의 무제한 사용권한을 허용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저작권자는 얼마나 복사되었는지만 관리하면 됐다. 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고가의 별도시설이 필요했고 복사를 반복할 경우 복사본의 품질이 현저히 저하되는 아날로그 매체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날로그와 달리 디지털은 하나의 거대한 최첨단 복사기라고 할 수 있다. 원본과 똑같은 복사본을 만들 수 있는 디지털 기기를 거의 모든 소비자가 가지고 있으며 더욱이 네트워크를 통해 손쉽게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배포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저작권자는 더 이상 자신의 저작물이 얼마나 복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기존의 복사권한에 근거한 저작권 보호 법체계는 소비자의 자발적 도덕성에 의존하지 않고는 더 이상 지켜가기 어려운 법제도가 됐다.

이런 이유로 최근 디지털저작권관리(DRM)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DRM은 사용권한에 근거한 저작권 보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복사권한은 제한하지 않되 사용권한을 제한하는 방안이다. 원저작자로부터 사용권한을 부여 받은 사람만 그 권한 내에서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더 이상 복사를 통제할 방법은 없으나 대신 사용권한을 효과적으로 제한할 방법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DRM 기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무제한 사용 권한은 물론이고 제한된 다양한 형태의 사용권한을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단지 몇 번밖에 쓰지 않을 저작물도 어쩔 수 없이 무제한 사용권한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불합리 한 점을 해소해 준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저작권 보호 장치가 인쇄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산업의 발전, 지식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듯이 DRM은 콘텐츠 산업이라고 통칭되는 새로운 산업의 발전과 지식사회를 앞당기는 데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작권자도 소비자도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저작권이라는 패러다임을 적극 수용해 나가야 할 때다.

<조규곤 파수닷컴 대표·컴퓨터공학박사>kcho@fas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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