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진보정치인 김철씨 재조명 움직임 활발

  • 입력 2000년 6월 6일 19시 47분


전 통일사회당 당수 당산 김철(堂山 金哲·1926∼1994). 그는 ‘보수와 진보의 양쪽 날개’를 갖추지 못한 한국정치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1957년 민주혁신당 창당 참여를 시작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관되게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실천한 진보정치인이자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6주기를 맞아 생전에 남긴 글들을 모은 ‘당산 김철 전집’(전 5권, 해냄)이 발간됐다. 그 자체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사료인 78, 79년의 ‘일기’와 ‘통일사회당의 역사적 임무’등의 문건들이 묶였다. 간행위원은 이만열 숙명여대교수(위원장·한국사) 양호민 한림대 석좌교수 등 생전의 ‘동지들’. 9일 오후4시에는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한국 사회민주주의 운동과 김철’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도 열린다. 이는 단순한 김철 재조명에 그치지 않는다. 자칫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뻔한 한국 사회민주주의 운동사의 정리이자 그를 통한 미래상의 조망이다.

김철이 주창한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은 ‘민족적 주체성의 확립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의 확충’. 식민지배, 분단의 역사적 경험을 가진 한국의 사회민주주의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같을 수 없다는 독자 노선 천명이었으며 정치적 자유를 짓밟는 북한정권을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분리선언이었다. 그는 또 한국사회민주주의의 뿌리를 실학과 동학혁명에서 찾았다.

사상가이기 이전에 그는 정치인이었다. 끼니를 건너 뛰어야할 만큼의 가난에도 불구하고 입후보했다. 임종철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이에 대해 “당의 노선, 사회주의 이념을 적극 실천하는 데는 각급 선거에 직접 참여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수단이 없다는 원칙을 지킨것”이라고 말한다. 일찌감치 국제연대의 중요성에 눈떴던 그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서 독일의 빌리 브란트, 프랑스의 미테랑 수상 사이에 앉는 아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철은 당대의 이해를 얻지 못한 ‘선각(先覺)’이었다. 70년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선거벽보에서는 ‘남북이 마주앉아 중립통일의 길을 뚫겠다’는 내용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삭제됐다. 국가보안법, 반공법 폐지를 주장해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한 세기 가량이나 너무 일찍 태어난 지도자”(강영훈 전 국무총리)라는 한탄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확산과 ‘참여민주주의 확대’가 맞물려 돌아가는 현재상황은 그의 원칙적인 선언을 그 어느 때보다 힘있게 만든다.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87년 ‘사회주의 통신’중)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