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의 한일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어느 정도 정상화의 길을 찾아가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경제 분야 협력에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한일 양국이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 산업의 공급망 안정과 디지털 전환 등 미래 지향 신(新)성장 산업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1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가 도쿄 경단련 회관에서 주최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 “디지털 전환,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 첨단 신산업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다”고 말했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분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 분야에서 무한대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일본과의 협력 의지를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은 사실상 처음입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한국의 반도체 제조 기업들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장비 업체들과 긴밀히 공급망이 연계돼 있다”고도 했습니다. 2019년 일본 정부가 이른바 ‘소부장’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일 양국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공급과 수요가 어긋났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16일 정상회담 이후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제기된 일본 정부의 성의있는 호응 조치, 다시 말해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제3자 변제를 하니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문제는 17일에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별도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양국 사이에 넘어야 할 과제가 몇 가지 있다. 하나하나 서로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미래를 향해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한 호응 조치는 이날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죠.
정부여당은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일본 측에 기시다 총리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언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또 피고 기업의 전경련-일본 경단련 출연 미래파트너십기금 참여를 밝히는 방안도 양국 정부가 협의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상회담 기간 동안 두 핵심 현안 모두 일본의 언급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을 마치고 이날 귀국하면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죄·반성, 배상·기여 문제에서 기시다 총리와 피고 기업이 얼마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내놓을지가 주목됩니다. 이게 풀리거나 최소한의 추가적 조치가 나오지 않으면 향후 한일 관계 복원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